
(서울=뉴스1) 문대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관세였던 의약품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뒤 덩치가 큰 글로벌 제약사, 이른바 '빅파마'들이 미국 투자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모든 제품에 관세를 매기겠다고 하자, 미국 내 공장을 건설해 수출로 인한 타격을 줄이려는 심산이다.
그러자 미국을 주요 시장으로 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당장 투자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흐름을 지켜보며 대응법 마련에 고심 중이다.
24일 제약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의 돈을 푸는 대표적인 빅파마는 스위스 제약사 '로슈'다. 로슈는 22일(현지시간) 향후 5년간 미국에 500억 달러(약 71조 235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를 통해 기존 미국 내 제조 및 연구개발(R&D) 기반을 확장하고 차세대 치료제 포트폴리오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투자가 이뤄지면 미국에서 1000개의 직접 고용을 포함해 총 1만 20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중에는 6500개 이상의 건설 관련 일자리도 포함된다. 이미 미국 현지에서 2만 500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로슈는 보폭을 더욱 넓혀 미국 내 입지를 굳히려 한다.
같은 날 리제네론도 일본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 후지필름 다이오신스 바이오테크놀로지와 30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리제네론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건립 중인 후지필름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통해, 미국 내 자사 생산 역량을 늘릴 방침이다.
이외에 노바티스는 향후 5년간 미국에 10개 생산시설을 신설·확장하는 데 230억 달러(약 33조 원)를 투자할 것이라고 공표한 상태고, 일라이 릴리도 270억 달러(약 39조 원)를 풀어 미국에 생산시설 4곳을 짓기로 했다.
이에 질세라 존슨앤드존슨도 4년간 550억 달러(약 79조 원)를 들여 3개의 생산 시설을 미국에 신설한다고 전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빅파마들의 최근 대미 행보를 보면 대부분 단순한 확장 개념을 넘어 신규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의 시장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지"라며 "업체들이 권력을 새로 잡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우리가 이만큼 미국에 관심이 크다'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GC녹십자, 바이넥스 등 국내 주요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들도 트럼프 관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일부 기업들이 미국 대관 조직에 힘을 쏟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CDMO 기업은 글로벌 시장 공략이 중요한 만큼 규제 변화를 파악하고, 수입 담당 파트너사와 협업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측은 미국 대관 업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의 업체는 해외 거점 조성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진행되는 내용은 없다는 답변을 내놓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도 현 상황을 주시하며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겠지만, 당장 미국 생산기지를 확보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며 "기업 역량을 강화하다가 구체적인 정책이 나와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ggod61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