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약품 상호관세 제외' 발표로 시간을 번 가운데 이후 부과될 관세정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이번 의약품 상호관세 제외를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에 생산시설을 조정하고 공급망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해 준 조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이 원료 수입 다변화와 자국 내 생산 확대 등 관세 부과에 대비할수록 의약품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 져야 할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은 리브(LIV) 골프 대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플로리다 마이애미로 향하는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관세)가 아주 곧 시작될 것"이라며 "제약(관세)은 별개의 범주다. 현재 검토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관세 발표 시기를 묻는 질문엔 "반도체는 곧 시작되며, 의약품에 대한 관세는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3일) 상호관세 발표에서 '공중 보건 악영향'을 언급하며 의약품을 제외한 것과 상반된 발언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전날 백악관은 공식 발표문을 통해 "공중 보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필수 의약품과 의료 물품은 관세 정책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에선 미국이 자국 기업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움직인 것으로 해석했다. 관세 부과가 갑작스럽게 시행되면 원료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미국 제약·바이오 기업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미국의 제약사 중 상당수는 인도나 베트남에서 수입한 원료를 중국 공장에서 완성한 뒤 미국으로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이때 중국 공장에서 완성한 약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게 되면 미국 제약사들은 원가 상승으로 이익이 줄고, 소비자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선 자국 기업이 관세를 부과하기 전에 생산 시설을 미국 본토나 멕시코로 옮기고, 원료 구입 국가를 다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릴리, 화이자, 머크(MSD) 등 미국의 주요 제약사들이 생산 시설을 미국 내로 이전하거나 옮길 계획을 검토 중이다.
미국 바이오업계에선 관세 발표를 앞두고 비판 여론이 터져 나왔다. 관세가 의약품 부족 가능성을 높이고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낮출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바이오협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표를 앞두고 바이오 기업 10곳 중 9곳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의약품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현재 미국 제약사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입 의약품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로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검토 중이라는 의약품 관세가 어떤 방식일지, 어느 정도 수준일지 알려지지 않았고 전례가 없는 만큼 과거 타 업종 사례를 기반으로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다.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선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단계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다. 초기에는 낮은 세율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인상하면서 기업에 생산과 공급 조정의 시간을 벌어줬다. 미국 입장에선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는 동시에 기업들이 충격을 덜 받도록 하는 효과를 냈다.
이에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은 미국이 6개월 뒤부터 5%, 1년 뒤 10%처럼 단계적인 인상 시나리오에 무게를 두고 있다.
바이오기업 관계자는 "어제의 발표(상호관세 제외)는 분명 긍정적인 것이었지만, 일시적인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는 게 입증된 것"이라며 "단계적 관세가 적용될 것으로 보지만 의약품은 자국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요소가 많은 분야라, 철강 및 알루미늄 때보다 강하게 적용하긴 어려울 것으로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연구원은 "(종전 미정부의) 발표에서 의약품은 관세 부과를 피했으나, 자국산업 보호에 적극적인 트럼프의 의중이 확인돼 의약품 관세 부과 이슈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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