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이 책의 저자 이동천은 부친의 영향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예'라는 공기 속에서 살았다. 연필보다 붓을 먼저 잡았고, 서예 작품 앞에서 한나절이나 넋을 잃고 앉아 있었으며, 자정까지 붓글씨 연습을 하느라 청소년 시절에 관절염을 앓았다.
그는 열 살 무렵 왕희지 글씨의 체본을 보고 비법이 숨겨져 있음을 직감했다. 그 후의 인생은 그 비법을 찾아 구체화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었다. 양런카이, 펑치융 등 중국 서예 대가들의 수제자로서 사사했고, 수십년 연구분석과 자료수집에 매진했으며, 4년간 자신을 방에 가두는 고독한 집필 작업 끝에 드디어 그 비법을 세상에 공개한다.
길고 고통스러운 작업의 결과물인 이 책은 역설적으로 찬란하고 명징하다. 이제 우리 모두 왕희지, 구양순, 저수량, 김정희 등 서예 대가들의 글씨가 어떻게 쓰여졌는지 알 수 있고, 또 따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2500년 서예 역사에 혁명이 이루어졌다.
왕희지 체본에서 비법의 존재를 감지한 사춘기 소년에서 훌쩍 중년의 나이가 된 이동천 박사가 세상에 공개하는 비법은 '전번필법(轉飜筆法)'과 '신경필법(神經筆法)'으로 요약된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높이는 것은 중국 현지에서도 보기 힘든 진귀한 도판들과 사신비, 왕희지의 난정서, 주의장의 시평공조상기, 저수량의 안탑성교서 등 명품 글씨에서 전번필법의 흔적을 추적하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또한 김정희뿐 아니라 김생, 허목, 송시열, 윤순, 이광사, 강세황, 정약용, 신위, 이삼만, 권돈인, 조희룡, 박규수, 신헌, 이하응, 정학교, 김성근, 김옥균, 지창한, 김응원, 민영환 등 우리나라 대표적 서예가들의 전번필법도 분석하고 소개한다.
그 과정에서 가로획(한일 자) 하나를 쓰는 방법이 8가지, 세로획은 18가지, 기역 획은 무려 31가지 이상이란 사실이 확인된다. 이동천이 개발한 '붓면 도형 표시'는 전번필법의 존재를 보다 철저하게 해부하고 학습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14일에는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저자 강연을 통해 왕희지와 김정희 등 서예 대가들의 비법을 공개하고 전번필법에 대한 시연도 펼칠 예정이다.
△ 신(神) 서예/ 이동천 글/ 라의 눈/ 7만9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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