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강민경 기자 = "나는 수천 명을 감금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다르게 말하면 수백만 명(일반 시민)을 해방시킨 것이다."(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
"아주 좋다. 내가 그 대사를 써도 되겠나?"(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선 이같이 화기애애한 대화가 오갔다.
부켈레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방하는 불법 이민자들을 엘살바도르 내 테러범 수용센터(CECOT)에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600만 달러(85억 원)를 받고 '교도소 외주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트럼프는 부켈레에게 "당신은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고, 부켈레는 "우리는 매우 기꺼이 돕고 싶다"고 화답했다.
회담 자리에서 부켈레는 기자들로부터 '행정 오류 때문에 실수로 추방된 이민자를 미국에 돌려보내겠냐'는 질문에도 "질문이 터무니없다"며 "어떻게 내가 테러리스트를 미국으로 밀입국시키겠느냐"고 일축했다.
부켈레는 행정 착오로 추방된 이민자 킬마르 아브레고 가르시아가 MS-13 갱단 일원이라는 트럼프 행정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미국에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부켈레의 트럼프 비위 맞추기는 계속됐다. 트럼프는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와 관련해 부켈레에게 "남성이 여성부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느냐"고 질문했다. 부켈레가 "그건 폭력"이라고 답하자 트럼프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부켈레는 트럼프 취임 이후 불법 이민의 95%가 감소했다고 주장하며 "이런 수치가 왜 언론에 나오지 않냐"고 물었고, 트럼프는 흡족해하며 "CNN이 우리나라를 싫어해서 좋은 수치를 내보내지 않는다"고 답했다. 부켈레와 주거니받거니 하며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을 저격한 것이다.
1981년생으로 젊은 지도자인 부켈레(43)는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수도인 산살바도르 시장을 거쳐 2019년 대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대통합동맹(GANA) 후보로 나서 당선됐다.
범죄조직 척결 등 과감한 국정 운영으로 인기를 얻어 지난해 80%가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으며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쿨한 독재자'로 내세우고 있다.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하는 등 평범하지 않은 측면이 많다.

이날 회담 분위기는 내내 밝았다. 부켈레는 트럼프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꺼내는 말마다 트럼프뿐 아니라 배석자였던 JD 밴스 부통령과 장관들의 웃음과 찬사를 유발했다. 날카로운 고성이 오갔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회담 때와는 정반대였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 회담을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빅토르 오르반(헝가리)에 이어 나이브 부켈레가 트럼프의 가장 아끼는 브로맨스 상대로 등극했다"고 평가했다.
부켈레는 트럼프가 가르시아 등 미국에서 정식 절차 없이 추방된 이민자들을 귀환시키라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법원이 아무리 잘못 추방한 이민자들을 다시 데려오라고 해도 엘살바도르가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 된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민자뿐 아니라 미국인 범죄자들까지 엘살바도르 감옥으로 추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 같은 방안이 실제로 검토되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법학자들은 미국인을 미국 땅에서 추방하는 것은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이민법 전문가인 에린 코코란 노트르담대 교수는 "미국 법률상 정부가 국민을 해외 추방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고 단언했다.
pasta@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