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2025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백기태호'를 향한 기대는 사실 크지 않았다. 과거 대표팀과 비교해 전력이 떨어진다는 섭섭한 평가가 많았고 가뜩이나 첫 경기에서 한 수 아래 팀에게 패하자 기대감은 더 줄어들었다. 그런데 4강까지 진출했다. 과정이 상당히 험난했는데, 그 가시밭길을 통과하면서 팀이 단단해졌다.
이제 1경기만 더 이기면 지난 대회에 이어 2연속 결승 무대를 밟을 수 있다. 상대가 개최국 사우디아라비아라 쉽진 않겠지만 어차피 토너먼트는 모른다. 더군다나 최근 사우디를 상대로 이겨본 좋은 기억이 있다. 어린 선수들의 대회는 특히 '기세'가 중요한데, 지금 백기태호의 분위기는 꽤 좋다.
백기태 감독이 이끄는 한국 U17 축구대표팀이 17일 오후 11시 사우디아라비아 타이프의 오카즈 스타디움에서 개최국 사우디아라이바와 AFC U-17 아시안컵 4강전을 치른다. 두 팀 모두 8강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다.
한국은 15일 열린 타지키스탄과의 8강에서 2-2로 정규시간(대회 규정에 따라 연장전 없음)을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 4강에 올랐다. 사우디는 일본을 만났는데 역시 90분 동안 2골씩 주고받고 승부차기(3-2)까지 가는 혈전 끝에 준결승 티켓을 손에 넣었다.
사우디의 4강도 쉽지 않았으나 백기태호의 여정에 비할 바 아니다. 일단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한국은 손쉬운 상대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고도 종료 직전 통한의 실점과 함께 0-1로 졌다. 슈팅이 21개였으니 몰아붙인 것은 맞지만 정작 유효슈팅은 단 3개뿐이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말하기 힘든 졸전이었다.
2차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6-0 대승을 거두면서 흐름을 바꾸는 듯싶었으나 예멘과의 최종전도 고전 끝 1-0 신승이었다. 11월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월드컵 출전권을 확보한 채 임한 타지키스탄과의 8강전은 아예 패배 직전까지 갔던 경기다.
한국은 후반 22분 정현웅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후반 38분과 40분 잇따라 동점골과 역전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1-2 스코어로 정규시간이 종료됐고 추가시간도 7분 가까이 흘렀으니 기적을 바라는 게 무리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대의 핸드볼 파울이 발생했고 VAR 확인 끝에 페널티킥이 선언돼 기사회생했다. 드라마를 썼다.
시원시원한 맛은 없었으나 결과적으로 힘겨운 과정이 선수들에게 자신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백기태 감독 역시 8강전 승리 후 "리드를 당하다가 승부차기 끝에 역전승을 거둔 만큼 현재 팀 분위기는 최고조"라고 전했다. 이 기운을 이어가야한다.

결승 길목에서 마주한 팀이 개최국이라는 것은 분명 달갑지 않다.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팀과 겨루는 것은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 선수들에게 더더욱 힘든 미션이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최근 이겨본 팀이라는 사실이다.
대표팀은 지난 2월 열린 UAE 4개국 친선대회에서 사우디를 만나 4-2로 승리했다. 연령별 대표팀에서 2개월이라면 그리 많이 달라질 수 있는 배경이 아니다. 자만심은 버리고 자신감만 취하면 호랑이굴에서 살아나올 수 있다.
백 감독은 "최근 사우디와 치른 경기를 바탕으로 잘 분석해 대응하겠다"면서 "선수들이 한번 이겨본 팀이라는 생각에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출사표를 던졌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1986년과 2002년, 2번 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직전이던 2023년 대회에서 결승 무대까진 밟았으나 라이벌 일본에 0-3으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사우디를 일단 꺾어야 23년 묵은 한을 씻을 수 있다.
또 다른 준결승 대진은 우즈베키스탄과 북한의 맞대결이다. 결과에 따라 남북한 축구대표팀이 국제대회 결승에서 만나는 흔치 않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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