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K리그1 4연패에 도전하는 울산 HD와 2025시즌 초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전하나시티즌이 4월의 첫날 밤 울산 문수구장에서 펼친 경기는 명승부였다. 승리하지 못한 팀에게는 미안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내용도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두 팀 모두 박수 받아 마땅한 경기였다.
예열 없이 시작부터 바로 뜨거웠다. 원정팀 대전이 전반 3분 만에 나온 신상은의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했고 전반 12분 페널티킥 찬스에서 키커 김현욱이 국대 수문장 조현우를 상대로 배짱 좋은 파넨카킥까지 성공시키며 격차도 벌리고 분위기도 휘어잡았다.
'어- 어-' 하다 2번이나 골문을 내준 울산 선수들의 멘털이 무너질 수 있던 상황이었는데, 이때부터 더 재밌어졌다. 전반전이 끝날 땐 황선홍 대전 감독 표정이 굳어있었다.
홈팬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 없던 울산 선수들은 2실점 후 마치 추가시간을 뛰는 선수들처럼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전반 41분 코너킥 상황에서 만회골이 나왔다. 골을 넣자마자 울산 선수들은 대전 골문 안에 있던 공을 빼내 자신들 진영으로 내달렸다. 빨리 경기를 재개하자는 뜻이었다.
전반 추가시간 이희균이 동점골을 터뜨렸을 때도 울산은 세리머니 없이 복귀하기 바빴다.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준 점수를 다 만회했기에 제법 기뻐할 만도 한데 얼른 다시 싸우자고 으르렁거렸다. 그야말로 전의로 불타올랐다.
일찌감치 벌어둔 2골이 다 지워졌으니 후반전은 대전의 부담이 컸다. 침울하던 홈 서포터들까지 깨어나 기운은 확실히 울산 쪽으로 넘어갔다. 확률 상 역전패 쪽 숫자가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또 예상과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정규시간이 다 지나간 뒤 고개 숙인 지도자는 김판곤 울산 감독이었다.
후반전도 느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전이 후반 11분 아껴둔 카드 주민규를 투입시켰고, 그가 필드를 밟은 지 7분 만에 울산 골망을 흔들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지난 시즌 울산의 선봉장이 적장으로 문수구장을 찾은 첫 경기에서 비수를 꽂았으니 스토리도 좋았다.
이후 주도권은 다시 만회해야하는 울산이 쥐었다. 하지만 대전 역시 1점을 지키겠다고 주저앉지 않았다. 정신없는 공방전. 공도 선수도 잠시의 멈춤 없이 필드를 질주했고 함께 손에 땀을 쥐고 있던 이들의 시간도 금세 지워졌다.
최종 스코어 3-2. 종료 휘슬이 울리자 승자 대전 선수들은 필드 위로 쓰러졌다. 울산 선수들도 힘을 소진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억지로 무릎만 짚고 버틸 뿐이었다. 어느 쪽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스플릿 라운드 때 모습만 1년 내내 유지하면 경기장이 팬들로 꽉꽉 찰 텐데..."
시즌 막바지 축구 관계자들과 자주하는 대화다. 보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혹은 더 이상의 추락만은 막기 위해 온몸을 내던질 때의 열정과 경기력이 평소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는 아쉬움이다. 탐색전이라는 명목 하에 무료한 전반전이 진행될 때 "이럴 거면 0-0이라고 치고 후반전부터 하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대전과 울산전이 보기 좋았던 것은 그런 답답함과 반대였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스코어가 나오기도 했으나 필드에 발 붙어 있는 선수를 볼 수 없던 내용이 팬들을 더 흥분시켰다.
해당 경기는 하나은행 K리그1 2025 '18라운드'였다. 애초 6월15일로 예정된 경기인데 울산의 2025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출전 때문에 앞당겨 치러졌다. 실질적으로는 두 팀의 시즌 '7번째' 경기였다. 다른 팀들은 모두 6라운드까지만 소화했다.
요컨대 아직 초반에 가까운 시점인데 마치 토너먼트 결승전이나 승강 플레이오프 버금가는 에너지가 문수구장을 가득 채웠다. 킥오프부터 선수들의 자세는 후반 추가시간이었다. 이렇게 뛰면 팬들은 온다.
반갑게도 판 전체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새다. 황선홍 대전 감독은 "이제 시즌을 시작했을 뿐"이라고 '현재 1위'의 의미를 축소하면서 우는 소리를 덧붙였다. 그는 "다들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모든 팀들이 뒤가 없는 것 같다. 시즌 초반인데 매 경기 다 쏟아내고 있다. 너무 치열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축구는 22명이 특별한 도구 없이 공 하나를 놓고 몸으로 뺐고 빼앗는 스포츠다. 기본적으로 거칠다. 전쟁에 자주 비유되는 이유다. 그러니 뛰지 않는 축구, 정적이고 소극적인 축구는 호응을 얻기 힘들다. 반대로, 선수들이 제대로만 뛰어도 함께 뜨거워질 수 있는 스포츠다.
모든 축구팬이 다 전략·전술을 꿰뚫고 있는 마니아는 아니다. 정말 심장이 2개일까 싶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우리 선수'만 봐도 행복한 '우리 편'이 많다. 시즌 7번째 경기도 최종전처럼 여기고 전반전부터 후반전처럼 뛴다면, 팬들은 경기장으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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