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서른넷 황새처럼, 날아라 서른다섯 주민규 [임성일의 맥]

실력은 출중 하나 '나이' 때문에 선발 갑론을박
대표팀은 '가장 잘하는 선수가'…잣대 동일해야

본문 이미지 - 대전하나시티즌에서 사령탑과 공격수로 호흡하고 있는 황선홍 감독(오른쪽)과 주민규. 과거 34세 황선홍이 그랬듯 지금 35세 주민규도 간절한 꿈을 꾸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대전하나시티즌에서 사령탑과 공격수로 호흡하고 있는 황선홍 감독(오른쪽)과 주민규. 과거 34세 황선홍이 그랬듯 지금 35세 주민규도 간절한 꿈을 꾸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2002 월드컵은 정말 마지막 기회였기에 무조건 해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만큼 다 바쳐 준비했다. 그래도 불안했다. 또다시 실패했을 때 돌아올 파장이 어떨지 알기에, 솔직히 두려웠다."

34세 나이로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준비하던 스트라이커 황선홍(현 대전하나시티즌 감독)의 회상이다. 선수 수명이 늘어난 지금도 서른넷은 많은 나이지만 그땐 진짜 노장이었다. 때문에 '최전방 공격수 황선홍'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잖았다.

황 감독은 "내 슈팅 하나에 온 국민의 시선이 따라 움직이는 게 보이는데 왜 부담스럽지 않겠는가"라는 표현까지 썼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는 황선홍인데, 커리어 마지막까지도 태극마크가 간절했다.

절박한 사명감으로 한일 월드컵에 나선 황선홍은 폴란드와 1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며 사상 첫 본선 승리의 주역이 됐고 이를 신호탄으로 히딩크호는 4강 신화를 썼다. 불행한 결말일 확률이 더 높았는데 믿기지 않는 해피엔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젠 어렵다"고 했을 때 포기 않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황 감독은 "대표팀은 늘 꿈이었다. 선수라면 응당 그래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그런 목표는 그저 그런 선수에 그치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2025년, 그때 황선홍보다도 한 살 더 많은 35세 스트라이커가 또 간절하게 대표팀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공교롭게도 소속팀 대전에서 황선홍 감독의 두둑한 신뢰 아래 펄펄 날고 있는 주민규가 주인공이다.

주민규는 현재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에 소집돼 있다. 홍명보호는 20일 고양 종합운동장에서 오만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조별리그 7차전을 치르고, 25일 수원으로 장소를 옮겨 요르단과 8차전을 갖는다.

2경기 모두 이기면 잔여 일정과 상관없이 본선행을 확정한다. 11회 연속 월드컵 진출이라는 이정표를 홈팬들 앞에서 세우기 위해 모든 선수들이 집중하고 있는데 최고령 주민규도 같은 마음이다. 1990년생. 어느덧 서른다섯이고 막내 양민혁(QPR)과는 16살 차이다.

소집 후 취재진과 마주한 주민규는 "나이는 팀에서 제일 많지만 마음가짐은 신인"이라고 센스 있게 각오를 전한 뒤 "아직 후배들이 나보다 대표팀 경력은 더 많다. 그러나 나도 이젠 어떻게 하면 팀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본문 이미지 -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는 주민규는 홍명보호의 최고참이다. 나이 때문에 그의 선발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꽤 있는데, 잘하면 박수 보내주는 것이 맞다. . 2025.3.1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현재 K리그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고 있는 주민규는 홍명보호의 최고참이다. 나이 때문에 그의 선발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꽤 있는데, 잘하면 박수 보내주는 것이 맞다. . 2025.3.17/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주민규는 지난해 3월, 33세 343일의 나이에 A매치에 출전하며 한국 축구 최고령 A매치 데뷔 기록을 세웠다. 그해 6월에는 34세 50일의 나이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클린스만 감독 경질 후 어수선할 때 '임시 감독'과 함께 등장한 '임시 공격수'라 평가절하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꾸준히 호출되고 있다. 잘하니 뽑힌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울산HD에서 대전으로 이적한 주민규는 K리그 개막 후 5경기에서 5골을 터뜨리면서 대전의 선두(4승1패) 비상을 이끌고 있다. 90분 내내 화려하진 않다. 하지만 찬스가 오면 골을 넣고야마는 해결사 기질이 있다. 사실 그게 공격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대표팀 주민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이미 나이가 많고, 북중미 월드컵이 열리는 내년에는 나이가 더 많아질 것이고, 가뜩이나 빠른 유형이 아닌데 본선에서는 경쟁력이 또 떨어질 것이니 대표팀 선봉장으로는 약하다는 게 주민규 승선을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다.

꽤 수긍한다. 하지만 동의는 어렵다. 현재 가용 공격수 중에서 골을 가장 잘 넣고 있는 선수인데 25세가 아니라 35세라는 이유로 빼면 맥 빠진다. 대표팀은 현 시점 그 나라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야 마땅하다. 내일을 위한 포석이 섞이겠으나 우선 선발 기준은 '실력'이다. "대표팀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말이 뻔해도 진짜 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수화기 너머 황선홍 감독은 "내가 마지막 대표팀 생활할 때랑 지금 민규 나이가 비슷하다"며 웃었다. 평가 대상이 소속팀 선수고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인물이 평생의 동반자라 말이 길진 않았으나 마음은 충분히 전달됐다.

"성실하다. 그리고 욕심이 있다. 생각보다 길게 (현역으로)뛸 것도 같다"고 주민규를 평가한 황 감독은 "확실한 목표와 간절함이 느껴진다. 팀의 간판 공격수라면 득점왕이 목표여야하고, 모든 선수는 당연히 대표팀을 꿈꿔야한다. 그런 높은 지향점을 갖고 뛰어야 발전할 수 있다"고 평소처럼 말했다. 서른넷 자신이 그랬듯, 서른다섯 주민규도 그리 하고 있다.

17세, 18세도 잘하면 뽑히는 곳이 대표팀이라는 인식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태극마크는 나이순으로 주는 게 아닌 까닭이다. 그렇다면 서른다섯도 같은 잣대여야 한다. 이웃 일본은 이번 3월 A매치를 위해 불혹에 다다른 1986년생 나가토모 유토를 다시 발탁했다. 심지어 엄청 많이 뛰어야하는 풀백이다. 잘하면 뽑힌다.

잘하고 있는데 '더 나이 먹으면'을 가정해 미리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설령 주민규의 활약상이 조금씩 줄어든다고 "그것 봐" 비난할 일도 아니다. 이미 귀감이 되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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