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주택 월세 시대가 바짝 다가왔다. 이미 월세 거래가 전세 거래를 추월하면서, 전세 종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월세화 현상은 빌라 전세 사기 여파로 비(非)아파트에서 시작해 이제는 아파트까지 가속도가 붙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주택 월세화 흐름을 바라볼 때 자칫 오해하기 쉬운 몇 가지 편향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월세 수익률과 전월세 전환율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월세 수익률은 보증금을 제외한 순수 투자금 대비 연간 월세 수익의 비율이다. 반면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바꿀 때 적정 월세를 산정하는 기준 비율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수익률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지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기준 전국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은 연 5.2% 수준이다. 자본이득 기대가 낮은 지방(5.5%)이 수도권(5.0%)이나 서울(4.6%)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실제 아파트 월세 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예를 들어 서울 강북권 A 아파트(전용 84㎡)의 월세 수익률은 최고 매매가와 월세 기준으로 연 2.2%에 불과하다. 일부 지방에서는 연 3%를 넘는 단지도 있으나, 대부분은 2% 초중반에 머문다. 이는 미국, 일본, 홍콩 등 주요국보다 낮은 수익률이다. 이를테면 홍콩의 80㎡ 아파트는 매매가 약 26억 원, 월세 약 654만 원으로 연 수익률이 3% 정도다.
그럼에도 한국 아파트 가격이 유지되는 이유는, 현금흐름보다는 미래 자본이득을 기대하는 성격이 강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면적인 월세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국 신규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61.4%였고, 아파트도 44.2%에 달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월세’에는 순수 월세뿐만 아니라 보증부 월세나 반전세까지 포함된다.
예를 들어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30만 원 계약도 월세 거래로 집계된다. 요즘 논의되는 ‘월세화’는 단순히 월세 건수가 늘었다는 의미보다는, 전체 임차료에서 월세 비중이 증가하고, 보증금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하지만 아파트 월세는 여전히 보증금 비중이 높아, 실질적으로는 ‘변형된 전세’, 즉 준전세 혹은 준월세에 가깝다. 게다가 집주인 입장에서도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려면 일정한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파트 시장에서는 여전히 전세를 안고 매수하는 갭투자 수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제외하고 아파트에서 순수 월세나 연세 계약이 보편화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셋째, 주택의 적정 가치 산정 기준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한국의 주택가격은 수익환원법(미래 수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방식) 기준으로 보면 고평가라는 지적이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에 따르면, 미국 주택가격은 역사적으로 연간 임대료의 20배를 넘지 않는 수준이 적정하다. 이 이상이면 고평가로 보며,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직전이 대표적이다.
이를 한국 아파트에 적용하면 대부분 버블 상태로 간주할 수 있다. 예컨대 강남의 B 아파트는 매매가 30억 원에 연간 월세 수입이 7200만 원으로, 임대료 대비 매매가격 비율이 40배를 초과한다. 이는 분명히 높은 수치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한국 아파트의 월세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순수 월세 중심이 아니라 전세라는 특수한 임대차 제도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월세화가 본격화되면, 지금처럼 전세가 비율이 아닌 월세 금액이 주택의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세도 깡통전세 같은 위험성이 있지만, 임대료 측면에서는 월세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다. 반면 월세는 매달 납부해야 하므로 심리적·재정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내 고혈을 짜서 온라인 통장으로 부치는 게 월세"라는 표현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가속화하는 월세화 현상을 세입자 입장에서 마냥 반길 수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