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대통령의 심장이 멈췄다(넷플릭스 드라마'돌풍' 대사 中)
(서울=뉴스1) 구진욱 기자 = 지난해 인기를 끈 넷플릭스 정치 드라마 <돌풍>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한 국무총리(박동호)와 이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정수진)의 대결을 그려냈다.
현실 정치에서 벌어질 법한 배신과 음모 등 이전투구에 다소 극적인 요소를 덧붙이면서 '정쟁'이 가득한 현 정치권에 메시지를 던졌다. 이 드라마를 본 이들은 노무현, 윤석열, 한동훈, 이재명, 조국 등 현 정치권의 여러 인물과 장면을 떠올렸다고 한다.
<돌풍>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에 있다. '대통령 시해', '비상계엄 모의', '헌법재판관 매수' 등 현실 정치에서 벌어지지 않을 일, 헌정사에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극적 요소가 돼 드라마의 전개를 이끌었다.
그러나 <돌풍>이 방영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처한 현실은 극중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됐다. 드라마 속 두 주인공이 공수를 교대하며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무기로 활용하며, 특검법과 거부권을 남발하는 여야 대치 상황은 이제 일상이 됐다.
작가의 상상력으로만 치부했던 대통령의 반헌법적이고, 위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현실이 됐다.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부터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까지 헌정사에 새로운 기록이 몇 번이나 갈아치워졌는지 모른다.
대통령과 의회가 국정 주도권을 놓고 서로 다투는 정치사 초유의 상황 속 헌정 질서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여야는 여기에 더해 이제는 헌법재판관 압박에까지 나서고 있다. '탄핵심판은 여론심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헌정 질서 수호'라는 마지막 가치마저 내던진 것이다.
탄핵소추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키로 한 것을 두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가 민주당과 짬짜미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헌재는 내란죄 철회를 국회 측에 권유한 사실이 없다고 즉각 부인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기일을 늦추기 위해 헌재가 다른 탄핵심판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심판은 변론준비기일이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헌재는 "정해진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렇듯 여야는 권력 투쟁의 도구로 법치를 타락시킨 끝에 결국 국민의 기본권과 의무를 규정하는 핵심 법인 '헌법'을 판단하는 헌법재판소의 '독립성'마저 흔들고 있는 것이다.
헌법은 헌법재판관의 정치 관여를 금지한다(112조 ②항). 또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4조)고 규정한다.
여야는 스스로를 헌법기관이라고 칭한다면 더 이상 헌재 흔들기를 그만둬야 한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는 재판관 '8인 구성'으로 불가역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정치에 오염된다면, 그렇게 돼서 국민이 납득하지 못한다면 온 나라는 다시한번 극심한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헌재의 권위가 위협받는다면 탄핵이 인용된다고 해서 작금의 사태를 불러온 근원적 문제 해결하고 새로운 정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헌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든 이를 대다수 국민이 흔쾌히 수용하려면 정치로부터의 독립된 공정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정파적 이익만을 몰두해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만은 이제는 여야가 멈춰서야 한다.
kjwowe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