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도축장의 변신'

전호제 셰프. ⓒ News1
전호제 셰프. ⓒ News1

(서울=뉴스1) 전호제 셰프 = 어릴 적 엄마와 시장에 가면 닭을 바로 잡아주는 가게가 있었다. 그곳에는 사람 키 높이가 넘는 닭장이 가게 한쪽에 있었다. 흥정이 이루어지면 닭은 바로 털이 뽑히는 기계로 들어가서 손질이 되어 나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냉장유통이 드물었기에 오히려 더 신선한 닭을 먹을 수 있었다.

요리를 하다보니 직업적 궁금증 때문인지 도축장에 관심이 있었다. 인도 케랄라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여행지도에 도축장(Slaughter house)을 발견했다. 인도의 도축장이 어떤 곳인지 궁금했다.

북인도는 종교적인 이유로 소의 도축에 엄격했다. 거리를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남인도인 케랄라주는 힌두교 색채가 옅고 기독교 등 타 종교신자도 많았다. 함께 여행하던 프랑스 친구들에게 도축장 방문을 권유하니 흥미를 보여 함께 가보기로 했다.

다음 날, 새벽 어둠에 눈을 비비며 게스트 하우스 밖으로 나가니 오토릭샤는 우리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지도상에 표시된 작은 건물을 향해 달렸다. 차에서 나오는 매연과 상쾌한 아침 공기가 묘한 대조를 주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곳이 우리들의 목적지였다.

원래 도축장은 공개되지 않지만 지인의 소개로 새벽현장을 볼 수 있었다. 그날은 소와 양이 1마리씩 작업이 될 예정이었다. 두사람이 한 조가 되어 능숙하게 효율적으로 작업이 시작되어 30분 정도 걸렸다. 작업은 말끔하게 정리되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현장에는 두 덩이의 고기만 남겨져 있었다.

도축장을 나오자 멀리서 해가 지평선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날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 셋은 아침 식사를 위해 카페에 들렀다. 그때부터 3일 정도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주문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차츰 다시 고기를 먹게 되었다. 다시금 육식을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 가족과 함께 마장동 축산시장을 방문했다. 가게마다 소의 부속물과 천엽, 소혀 등이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고 잘 정리된 구이용 고기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이곳은 서울지역 육류의 60%를 공급하는 등 지역 경제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면 이곳 거래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장동에서 한때 도축이 이루어졌다는 곳은 깔끔한 아파트가 서 있고 근처 청계천 강변에는 공원단장과 꽃 심기가 한창이었다. 도축장은 1998년에 충북 음성으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이곳에 계속 도축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나라마다 큰 도시에는 대부분 도축장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도시의 확장에 따라 도축장의 운명도 바뀌게 마련이다.

미국 뉴욕에는 미트팩킹 디스트릭(Meatpacking District)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1920년만 해도 250개의 도축장과 관련 시설이 있었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호텔과 부티끄 숍이 가득 찬 동네로 변신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처음 뉴욕에 살게 되었을 때 육류업체를 보기 위해 이 지역을 걷다가 실망한 적도 있었다.

중국 상하이에는 1933 올드밀펀이라는 유명한 도축장이 있다. 이곳은 층별로 서로 다른 가축들을 도축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환기와 위생을 위한 독특한 구조인데, 디자인을 보면 도축이라는 목적을 위해 세심한 고려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건물의 디자인적 매력을 품은 패션, 편집숍, 카페가 들어서 상하이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일본 도쿄의 시바우라는 여전히 도축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마장동이 유통과 식당의 기능만 가지고 도축은 음성으로 이전한 것과는 다르다. 대신 도축에 이해를 돕기 위한 교육관을 세워 어떻게 도축이 이루어져 왔는지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도축의 위생과 현대화를 강조하여 도축과정의 관람 등 일반인의 이해를 돕는 데 공을 들였다.

상하이와 뉴욕은 새로운 콘셉트로 탈바꿈을 이루어냈다면 도쿄는 전통의 보존과 현대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서울의 마장동은 서비스 시장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역산업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장동에서 먹었던 소고기는 신선하고 맛이 좋았다. 가격도 요즘 물가에 비하면 적절했고 무엇보다 상인분들도 고기의 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한우의 품질은 상당한 발전을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게 우리의 도축시장도 이미지 개선을 위한 위생과 홍보에 더 많은 발전이 있었으면 좋겠다.

shef7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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