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 자사주가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는 데 남용되는 일을 막기 위해 도입한 자사주 공시 규제가 유명무실한 걸로 나타났다. 취지는 '주주가치 제고'였지만 기업 대부분이 소극적으로 공시하면서 사실상 '눈치 보기'에 그치고 있단 지적이 업계에서 나온다.
8일 뉴스1이 '주주환원' 모범생들로 구성됐다는 코리아밸류업지수 편입 종목 중 중견 중소기업을 가려내, 그중 자사주 공시 의무 대상 기업을 조사한 결과 공시 의무가 있는 13곳 중 절반 이상이 처분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해당 기업은 비에이치(자사주 보유 비중 10.12%), 에스에프에이(15.84%), 케어젠(9.02%), 티케이지휴켐스(6.1%), SOOP(7.29%), JYP엔터테인먼트(6.75%), 오뚜기(14.18%) 등이다.
대부분 "현재 자기주식의 취득·처분 계획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식으로만 공시가 이뤄진 곳들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그동안 자사주가 주주 가치 제고가 아닌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남용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당국이 규제를 꺼내든 것이다.
규제는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 주식 총수의 5% 이상인 상장사가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에 대한 보고서를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시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기업들의 자사주 관련 투명성이 높아질 걸로 기대됐지만 조사 대상 상장사 중 절반은 사실상 공개하지 않았고 밝힌 곳도 대부분 "정해진 게 없다"가 결론이었다.
밸류업지수에 편입되지 않았더라도 업종별로 수위를 달리는 등 주요 중견, 중소기업 22곳을 뽑아 공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절반인 11곳이 자사주 보유 목적과 처리 계획 등을 사실상 밝히지 않은 걸로 나타났다.
물론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 처분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힌 중견·중소 상장사도 있었다.
이녹스첨단소재(6.95%)는 "3년 동안 매년 20만 주 이상 소각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메가스터디교육(6.13%)도 최근 자사주 전량을 소각했다고 밝혔다.
주주환원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처분 계획을 밝힌 곳도 있었다.
덴티움(22.09%)은 "특별한 사정 변경 전까지 회사가 보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씨젠(11.6%)은 "양도제한조건부주식 중 권리 확정 및 지급 조건이 달성된 주식에 대해 자기주식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공시했고 엔씨소프트(11.6%)는 "투자 재원으로 우선 활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메디톡스(8.26%)는 "임직원 동기부여 및 인재 유치를 위한 주식매수선택권 행사를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공시했다.

코리아밸류업지수에 편입되지 않은 공시 의무 상장사 역시 절반 가까이가 처분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해당 기업은 CJ대한통운(000120)(자사주 보유 비중 12.57%), 한샘(009240)(29.46%), 노루홀딩스(000320)(22.48%), 쿠쿠홀딩스(192400)(12.6%) 등이다. 아세아제지(7.08%)는 처분 계획은 밝히지 않고 취득·소각 계획을 관련 공시로 갈음했다.
반면 대동(000490)은 "임직원 성과급으로 활용 예정"이라고 공시했고 퍼시스(016800)는 "대규모 투자 시 처분 검토"라고 밝혔다.
KCC(002380)는 "투자 및 사업 확장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임직원 보상 재원 및 시장에서의 유동성 확보를 위한 사용 검토"라고 밝혔고 삼화페인트(000390)는 "전략적 제휴, 타법인 지분 인수, 주식매수선택권 행사, 직원 상여금 지급 등으로 처분 예정"이라고 명시했다.
자사주 보유 비중은 2024년 12월 말 기준이다.
업계는 예견된 일이었단 분위기다. 당장 어떤 경영 환경 변화가 닥칠지 모르는데 처분 계획을 구체적으로 못 박기는 부담이라는 것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자금 여력이 있다면 주주가치 제고에 활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공시해서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힐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규제당국은 "자사주 처분 계획이 있다면 투명하게 밝히라는 취지"란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계획을 공시하라는 것이지 주주가치 제고 목적을 강요하는 게 아니다"라며 "주주들이 투자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라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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