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주평 기자 = 최근 D램·낸드 제품의 현물 가격이 상승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락한 메모리 가격이 1분기에 바닥을 찍고 2분기부터 빠르게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물가격 상승이 반드시 고정거래 가격 상승으로 반영되지는 않기 때문에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고 미국의 관세 정책 등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시장조사기관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메모리 현물 시장에서 일부 제품 가격이 상승하고, 미국 샌디스크 등은 다음 달부터 낸드 제품 가격의 인상을 공지했다.
메모리 현물 가격은 대리점과 소비자 간 소규모 거래에서 형성되는 가격으로, 기업 간 대규모 거래에서 책정되는 고정거래 가격과는 성격이 다르다. 현물 가격은 현재의 수급 상황과 미래 전망이 빠르게 반영돼 고정거래 가격의 선행지표로 활용된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14일) 기준 선단 D램 제품인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16Gb' 가격은 5.08달러로 한 달 전보다 6.4% 상승했고, 같은 기간 범용 제품인 DDR4 8Gb 가격은 1.76달러로 1.6% 상승했다.
낸드에서도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에 이용되는 싱글레벨셀(SLC) 16Gb 제품 가격은 8.03달러로 한 달 전보다 1.7% 상승했고, 같은 기간 멀티레벨셀(MLC) 128Gb 제품 가격은 6.7달러로 1.3% 상승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내 AI 프로세서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이구환신(以舊換新) 효과로 중국 가전 수요도 회복 조짐이 나타난다"며 "메모리 업체들은 1분기 업황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으로 출하를 줄이는 상황이기에 현물 가격이 예상보다 빠르게 상승 전환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저비용 AI '딥시크' 발표 이후 값비싼 HBM이 요구되는 고성능 AI 모델 외에도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이 개선된 DDR5를 이용한 경량화된 AI 모델 개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이구환신은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낡은 소비재를 신제품으로 교체할 때 정부가 제품 가격의 약 2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이다.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이구환신 지급 범위를 스마트폰·태블릿PC 등 개인용 디지털 기기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 5위 낸드 업체 샌디스크는 다음 달 1일부터 고객사에 낸드 가격을 10% 인상한다고 최근 공지하기도 했다. 샌디스크 등 낸드 업체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격 하락에 따라 감산을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메모리 시황의 반등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현물가격은 자주 변동하기 때문에 시황 개선의 지표로 곧바로 해석하기는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현물가격이 무조건 고정거래 가격의 선행지표로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른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 2021년 8월 미국 모건스탠리는 '윈터 이즈 커밍'(Winter is coming)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메모리 현물 가격 약세를 근거로 반도체 시황의 호황 사이클이 끝나고 하락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택근무에 따른 IT기기 수요 급증 등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늘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는 역대 최대 매출을 경신한 바 있다.
다음 달 2일로 예고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도 반도체 시황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메모리 수출액은 3억542만 달러로 전체(720억1970만 달러)의 0.42% 수준이지만, 관세 인상으로 소비자 가격이 올라 세계 최대인 미국 시장에서 전자·IT 기기 수요가 감소하면 메모리 수요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깎아 먹을 정도의 관세를 책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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