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희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의 핵심과제인 주주이익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9일 밝혔다.
이 원장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과 23개 자산운용사 대표가 참석한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자본시장은 만성적인 증시 저평가, 기업 실적 둔화 우려, 글로벌 관세전쟁 등 '누란(累卵)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기업의 자율성 보장, 시장의 공정성, 투자자의 수익이라는 3가지 조건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간 금투세 폐지, 공매도 전산화 시스템 구축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지만, 주주이익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여전히 미완"이라며 "더는 소모적 논쟁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자본시장에는 당리당략,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입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산운용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제언도 내놨다.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형식적 의결권 행사, 사익추구, 계열사 편향 결정 등 신뢰를 훼손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의결권 행사 모범·미흡사례를 명시적으로 공개해 시장이 성실한 수탁자를 가려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업계도 조직 내 의사결정과 보상, 평가 체계 전반에 신인 의무가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각별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운용업계의 기본역량 약화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최근 일부 대형사를 중심으로 외형 확대를 위한 보수 인하 경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운용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펀드가격(NAV) 산정 오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이즈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운용사에 대해서는 펀드시장 신뢰보호를 위해 상품운용과 관리체계를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또 글로벌 경쟁 속 'K-운용'의 차별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펀드 규제 개선, 업무영역 확대 등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운용사가 나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끝으로 "자산운용산업은 혁신기업을 지원하고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라며 "눈앞의 숫자보다 보이지 않는 신뢰의 가치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자산운용사 CEO들은 주주권익 보호를 위해 상법상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이 필요하단 의견을 냈다. 한국 증시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추진,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력 제고, 의결권 공시강화, 중복상장 해소 장려책도 촉구했다.
자산운용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펀드가입 절차 간소화, 외화표시 상장지수펀드(ETF) 상장 허용, 장기적립식・채권형 상품에 대한 세제상 혜택 부여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업계도 인공지능(AI) 기술 활용 운용 효율성 제고, 마케팅 자제 등 자정 노력 지속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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