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희 김근욱 기자 = 행동주의 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가 KT&G(033780) 경영진 견제를 위한 이사 선임 건에서 잇따라 유효타를 날리는 모습이다. 집중투표제 요구를 관철한 가운데,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후보와 단일화까지 나서며 FCP 지지 후보가 사외이사에 선임될 가능성이 커졌다.
5일 FCP에 따르면 이상현 대표는 KT&G 사외이사 후보에서 자진사퇴하고 이달 개최될 주주총회에서 기업은행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인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중요한 것은 주주를 위한 CCTV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사외이사가 KT&G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표 분산을 막고, 이번 기회에 주주의 식견을 갖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반드시 뽑히도록 전력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FCP와 기업은행의 사전 교감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와 무관하게 KT&G의 장기적인 경영 성과를 위해 주주제안을 했다"며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 선임을 통해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및 주주들의 의견을 대변할 이사회 구성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달 28일 예정된 KT&G 주주총회 핵심 의제는 대표이사와 사외이사 선임의 건이다. KT&G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방경만 수석부사장을, 사외이사로는 임민규 이사회 의장을 추천했다. 하지만 최대주주인 기업은행이 새로운 후보를 사외이사로 추천하며 사실상 제동을 건 상황이다.
기업은행 내에선 일부 고위 관계자를 중심으로 KT&G 내부 인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T&G는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 분산 기업으로, 경영 권한이 최고경영자(CEO)에게 집중돼 이사회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FCP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FCP는 KT&G가 2002년 민영화 이후에도 내부 인사로만 사장 선임을 해 '내부 세습'을 이어가고 있다며 강력 비판해 왔다. 최근 용산 대통령실에 서한까지 보내며 "KT&G는 겉으로만 4연임을 포기한 채 카르텔이 명맥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영업이익을 10배로 키운 외부 후보는 아예 예선 탈락시키고 30%를 폭락시킨 사람은 최종 후보가 됐다"며 방경만 부사장을 직격했다.
주주들 사이에서 KT&G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의식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FCP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이번 주총을 앞두고 주주제안 후보에 유리한 환경을 잇달아 조성하며 행동주의 펀드로서 입지를 키우는 모습이다.
FCP는 앞서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였던 집중투표제를 관철시켰다. 집중투표제란 다수의 이사직에 대해 주주가 그 자릿수만큼 복수의 투표권을 특정 이사에게 몰표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KT&G는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를 묶어서 투표하는 방안도 허용했다.
여기에 이상현 대표가 사퇴하면서 손동환 후보의 사외이사 선임이 유력해진 상황이다. 각각 2개의 투표권을 가진 기업은행과 FCP가 지지하는 손동환 사외이사 후보에게 몰표를 주면 KT&G 추천 후보자보다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손동환 교수가 사외이사로 선임되면, 방경만 부사장이 대표가 되더라도 경영진 견제를 위한 발판은 마련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신임 사장안 부결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6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2018년 기업은행이 백복인 사장 연임에 반대할 땐 투자자들 사이에선 기업은행의 행보를 '관치'로 바라보는 기류가 강했다. 이에 다른 투자자들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지배구조 정상화 필요성이 대두되며 FCP와 기업은행 외에도 '반대 전선'에 동참할 투자자가 더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민영화된 옛 공기업인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 독립성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글로벌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지난해 FCP의 주주제안에 일부 동의하며 외국인 투자자들 참여 가능성도 높아졌다. 정부의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에 따른 주주가치 제고 분위기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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