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옴니버스 영화는 하나의 테마를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선보이는 형식이다. 다양한 시각의 주제 의식을 담고 새로운 이야기와 캐릭터, 독창적이고 실험적 형식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준다. 근미래 AI를 소재로 한 옴니버스 '귀신들'이 관객들과 만난다.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귀신들'(감독 황승재)은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에서 인간을 형상화한 AI들이 인간과 공존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구세주2'(2009) '구직자들'(2020) '썰'(2021) '아부쟁이'(2022) '안나푸르나'(2023) 등을 선보인 황승재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보이스피싱' '모기지' '음성인식' '페어링' '업데이트'까지 총 5개 에피소드로 이뤄졌다. 해당 에피소드 모두 계속되는 신도시 개발로 도시 곳곳이 폐허가 된 근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강찬희와 고(故) 이주실이 모자 관계로 호흡을 맞춘 '보이스피싱'에서는 AI 피싱과 독거노인 문제를 다뤘다. 오희준이 출연한 '모기지'에서는 신축에서 살고 싶어 하지만 500년 모기지를 망설이는 AI의 이야기를 그렸고, 이요원이 등장한 '음성인식'에서는 버려진 애완용 AI와 이에 연민을 품은 인물을 길냥이와 캣맘에 비유했다.
백수장과 이재이가 나선 '페어링'은 오랜만에 여자와 재회한 남자가 뒤늦게 진심을 전하지만 여자는 AI, 남자는 귀신이라는 반전을 담았다. 정경호가 출연한 '업데이트'는 암 투병 중인 인기 작가 위기찬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AI의 업데이트를 위한 인터뷰를 통해 진짜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각 에피소드는 AI가 상용화된 세계관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담고 있지만, 지금 현실의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도 연결된다. SF라는 장르적 특성과 재미보다는 감독이 AI를 앞세워 그린 세계관을 통해 제시하고 싶은 문제의식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다만 그 문제의식은 근미래에 벌어지는 상황으로만 표현되면서 단순 문제 제기에 그치고 날카롭고 뚜렷한, 깊이 있는 메시지로 발전하진 못한다.
이요원과 강찬희, 오희준, 정경호 그리고 고 이주실 등 실력파 배우들이 함께하며 영화와 캐릭터에 힘을 실어준 점은 돋보인다. 강찬희는 어딘가 서늘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들 AI로 등장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더한다. 이요원 또한 속내를 알 수 없는 'AI맘'으로 등장하며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정경호는 1인 2역으로 두 AI의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활약을 보여준다. 특히 배우들의 열연이 단조로운 장면들을 풍성하게 하고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 묘사는 인물들의 방대한 대사로만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장면 전환이 많지 않아 다소 지루해지기도 한다. 정경호 또한 "구강으로 SF를 표현하는 시나리오"라고 했을 만큼, 대사 위주의 영화다. 이 때문에 영화 초반 형성됐던 긴장감이 느슨해진다. 또한 AI가 인간의 형상을 한 모습으로 등장, 상용화된 근미래를 그렸음에도 소품이나 공간 등이 2025년 현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적은 제작비의 한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귀신들'이라는 제목 역시 영화와 썩 잘 어울린다는 인상은 아니다. 감독은 "'AI가 허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귀신과 일치하지 않을까' 해서 '귀신들'이라는 제목을 지었다"며 "영화 개봉을 하며 공포 워딩을 쓰진 않았지만 제목 때문에 그렇게 (공포 장르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게 진짜 (현실) 공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사방에 널린 삶의 현실 공포를 생각하면 '귀신들'이 그린 근미래의 공포는 애석하게도 피부에 와닿진 않는다.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