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물가, 느리게 떨어진다…한은 총재 "세상에 공짜는 없어"

[문답] 정부 관리 효과 있었지만…물가 둔화 늦출수도
"美 인하 가능성 커졌지만 아직 본격 논의는 아닐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0일 우리나라의 물가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면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품목별 물가 관리, 공공요금 인상 자제 등에 따라 국내 물가 정점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았다. 하지만 관리 대상 기업과 에너지 공기업이 받는 비용 압력은 누적됐기 때문에 앞으로의 물가 둔화 속도는 더딜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 별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의 효과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물가 관리를 했기 때문에 물가가 많이 안 올라가고 기대 수준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면서도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처럼 관리를 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물가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 3%대 물가 상승률이 목표인 2%까지 마지막 걸음(라스트 마일·last mile)이 남았다면서 이 걸음은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느린 물가 둔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고금리를 오래 유지해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는 "올해 물가 둔화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걸음, 라스트 마일은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은 물가 안정 목표인 2% 수렴 시점으로 내년 말 또는 내후년 초, 상반기를 지목 중이다.

아래는 이 총재, 김웅 한은 부총재보, 최창호 한은 조사국장과의 일문일답.

-미국의 물가가 우리보다 높은데 금리 인하에 대한 논의를 우리보다 먼저 시작했다. 그 이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이창용)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의 발언은 금리를 더 올리지 않더라도 현재 금리 수준을 오래 유지하면 상당한 긴축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봤다. 물론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 논의가 있었다고 말하면서 시장에 인하 기대가 일어났지만 나의 해석은 다르다. 연준의 이번 점도표를 보면 내년 금리를 0.50~0.75%포인트(p) 인하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시장은 1%p 넘게 인하를 기대하고 있어 (시장의 기대가 과도한지) 지켜봐야 한다. 또 미국에서 금리 인하 논의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아직 불확실성이 있다. 본격적인 인하 논의를 시사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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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의 갑작스러운 스탠스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나.

▶(이창용) 파월 의장이 시장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크게 변화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물론 금리 인하 논의를 언급함으로써 시장에 비둘기적으로 보인 건 같다. 어느 정도 인하 가능성이 커진 것은 맞다. 그런데 이런 미국의 완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중요한 영향은 미국이 이제 더 이상 금리를 확실하게 올리는 것은 아니라는 기대가 자리 잡힘으로써 국제금융시장이 많이 안정되고 통화정책에 있어 환율, 자본이동 등의 제약조건 하나가 풀렸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독립적으로 국내 요인을 보면서 통화정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물가가 예상대로 안정된다면 성장과 가계부채 문제가 상충할 수 있다. 이 경우 성장과 가계부채 중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하나.

▶(이창용) 가계부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 성장과 맞바꿀 대상은 아니다. 금리 정책을 할 때 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조정되는 데 방해가 되는지를 봐야 할 것 같다. 내년 성장률이 2.1%라고 할 때 이는 IT 수출이 많이 회복됐기 때문으로, 한은 내부에서는 IT를 제외하곤 내수 기준 1.7% 성장을 보고 있다. 따라서 부문에 따라 피부로 느끼는 경제 회복 정도가 굉장히 다를 것이다. 경제 성장률 전체로 봐서는 부양이 필요 없지만, 고통을 겪는 부문이 많고 취약계층이 있기 때문에 타깃해서 부양하는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다른 어떤 이유에서 성장률이 낮아질 경우는 경기와 물가에 대한 상충 관계가 더욱 미묘해질 텐데 그럴 때는 상황을 봐서 대처해야 하며, 금리를 인하할 경우 부동산 쪽으로 자금이 쏠리는 것은 아닌가를 함께 유의해야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올초 부동산 가격이 고점 대비 30% 가까이 하락하면 위험하다고 했다. 여전히 유효한 기준인가.

▶(이창용) PF 문제가 터지면 질서 있게 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 30% 하락은 지난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을 때 그 정도면 일부 부담되는 금융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5% 떨어졌다가 지금 5% 정도 올라 다시 조정되는 국면에 있기 때문에 지금도 다시 똑같이 30%냐, 이것은 시뮬레이션을 해 봐야 한다. 그 숫자가 그대로일 거라 생각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이 어떤 식으로 변하더라도 질서 있게 PF를 조정해 나가면서 연착륙을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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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품목별 담당자를 지정하는 등 물가 관리를 강하게 했다. 물가 둔화에 도움이 됐다고 보나. 아울러 관리했던 물가가 추후 지연된 가격 인상 형태로 나타나면서 물가 둔화를 더디게 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나.

▶(이창용) 지난해 물가 관리를 했기 때문에 그만큼 물가가 많이 안 올라갔다. 그것이 기대 수준에 미치는 효과도 상당히 좋아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가 없는 것처럼 그렇게 관리를 했기 때문에 이것을 되돌리는 과정에서 물가 떨어지는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바로 관리를 통한 바로 물가 스무딩(smoothing·평탄화)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11월 경제 전망 당시보다 국제유가가 하락했다. 물가 전망의 전제 조건이 달라졌을까.

▶(김웅) 지난 전망과 비교해 크게 두 가지가 달라졌다. 국제유가가 낮아졌고 미국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가 변했다. 그러나 최근 상황만 보면 유가도 다시 반등하고 있고 미국 통화정책 기대 변화도 변동성이 크다. 내년 1월, 2월쯤 다시 말씀드리겠다. 물가 목표 수렴 시기는 현재로선 내년말이나 2025년 초반, 상반기로 보고 있다.

-11월 전망 당시 전기·도시가스 인상, 유류세 인하 조치의 환원을 어떻게 가정했나.

▶(최창호) 기본적으로 정부의 발표 내용을 반영했다.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 적자 등을 반영해 점진적 인상 방침을 발표했기 때문에 내년 점진 인상을 가정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기나 인상 폭은 한은이 정책을 미리 알고 있다는 오인을 일으킬 수 있어 밝히기 어렵다. 대중교통요금도 물가 전망에 반영돼 있으며, 한꺼번에 인상돼도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icef0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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