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올라온 감리 부실·후분양 논의…이번엔 ‘확’ 고칠까[부동산백서]

연이은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사고…설계·시공·감리 부실·부패까지
전문가들, 근본 원인으로 '선분양제' 지적

올해 4월 29일 지하주차장 지붕 붕괴사고가 난 인천시 서구 검단 아파트 공사현장.  2023.5.2/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올해 4월 29일 지하주차장 지붕 붕괴사고가 난 인천시 서구 검단 아파트 공사현장. 2023.5.2/뉴스1 ⓒ News1 정진욱 기자

(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지난해 광주 화정 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에 이은 올해 인천 검단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로 건설·건축업계에 만연했던 총체적 부실이 '새삼' 드러나는 모습입니다. 업계 '고질병이 터졌다'는 반응처럼 근본 원인과 해법도 여러 가지가 거론됩니다.

◇LH 발주 공공아파트 설계·시공·감리 총체적 부실

지난 7월 5일 국토교통부 건설사고조사위원회가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로 논란은 확대일롭니다.

사고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고 지에스건설이 시공, 목양종합건축사사무소가 감리한 현장입니다. 붕괴 사고가 난 건 입주를 여덟 달 앞둔 지난 4월 29일입니다.

사조위가 발표한 핵심 원인으로는 대들보 없이 기둥으로만 지붕(슬래브)을 받치는 '무량판 구조'의 핵심인 기둥 속 철근 누락이 지목됐는데요.

필요한 전단보강근 32개 중 '설계' 과정에서 15개가 누락되고, 이 설계 도면을 보고 집을 짓는 '시공' 과정에서 추가로 4개가 누락, 결과적으로 19개가 빠진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를 잡아낼 '감리'도 제역할을 못 한 겁니다.

같은 달 30일부터 계속된 LH의 자체조사 결과는 더 큰 논란입니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91개 단지 중 20곳에서 검단의 경우처럼 철근이 누락됐다는 겁니다.

연일 국토부와 LH 발표,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기둥에 철근이 모두 빠진 주차장 △문제의 현장 설계·감리사 대부분 LH 출신이 다니는 '전관'업체였던 점 등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LH의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현장 및 민간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까지 발표되면 또 다른 후폭풍이 일 수 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내 아파트 단지에 공급되는 상수도관 이물질 발생 현상, 남양주 공공분양 아파트 보강철근 누락등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시흥은계 지구 수돗물 민원 및 LH 무량판 조사 결과 대응방안 논의를 위해 마련됐다. 2023.7.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공공주택 긴급안전점검 회의에서 경기 시흥시 은계지구 내 아파트 단지에 공급되는 상수도관 이물질 발생 현상, 남양주 공공분양 아파트 보강철근 누락등의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날 회의는 시흥은계 지구 수돗물 민원 및 LH 무량판 조사 결과 대응방안 논의를 위해 마련됐다. 2023.7.30/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설계·감리 대가 '후려치기'…저가경쟁 속 전관영입

외부에선 아파트를 지은 시공사에 주목하기 쉽지만 사실 시공만큼 중요한 게 밑그림을 그리는 설계와 전체 공사 과정을 감시할 감리입니다. 국가공인자격을 취득한 건축사의 영역이죠.

건축사는 5년제 건축학과를 나와 설계사무소에서 4년 이상 실무경력을 쌓아야 시험 '응시자격'이 주어집니다. 합격률은 5% 내외인데, 한해 많이 뽑아야 600명에 불과해 '바늘구멍'이죠.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탄탄대로가 열리진 않습니다. 20~30년씩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 대표들은 "그때랑 지금이랑 설계 대가가 똑같다"고 탄식하는데요. 민간 건설사가 시행하는 아파트의 설계 대가가 턱없이 낮은 겁니다. 감리 사정도 다를 바 없죠. 대가만 낮은 게 아닙니다. 민간현장은 감리를 피감대상인 시공사가 뽑아 대가를 지급합니다. 허수아비가 되기 쉬운 구조입니다.

LH처럼 공공이 시행하는 현장은 설계·감리비를 많게는 민간의 6배 지급합니다. 바닥까지 떨어지는 민간 감리비를 지켜줄 국토부의 '기본형 건축비'상 감리대가 기준은 '총공사비의 0.84%'. 이번 인천검단 LH현장 감리비 비중이 2.96%였다니, 공공현장은 '이권'이 될 수밖에 없죠. 이에 LH, 국토부 퇴직자를 '모셔다' 공공사업을 수주하는 '전관예우' 문제가 생겨난 겁니다.

마포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그때 그시절엔 현장 감리를 공무원이 했다죠. 붕괴 문제와 수뢰·비리 등이 불거지자 2000년대부터 감리를 민간으로 넘긴 건데, 사실상 민간이 아닌 전관이 차지해온 겁니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이번 총체적 부실의 핵심을 이처럼 설계·감리 부실에서 짚고, 서울형 건축비와 서울형 감리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입니다.

지난 1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의 모습.(HDC현대산업개발 제공) 2023.8.3/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지난 1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신축공사 붕괴사고 현장의 모습.(HDC현대산업개발 제공) 2023.8.3/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짓기도 전에 사는 '선(先)'분양 제도…부실 부추겼나

세계 유일 아파트 선분양제도 역시 자주 지적되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공사 기간 발생하는 이자 등 금융 비용이 집값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수요자 입장에선 좀 더 저렴하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죠. 실제 입주가 시작될 때 아파트값이 분양가보다 오르면 수억원씩 웃돈을 받고 팔아 시세차익을 보기도 합니다.

다만 막상 입주 시점이 되니 집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하자와 부실공사 문제도 끊이지 않는데요. 최대 5년의 하자보수기간이 있지만 그 책임소재를 입증하는 일도 소비자에겐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시공상 하자라도 5년 뒤 밝혀지면 보수 의무가 없습니다.

이런 부작용의 대안이 바로 후(後)분양인데요. 다 지어진 뒤 확인하고 사는 문화가 보편화되면 아무래도 짓기 전에 사는 것보다는 공급자도 좀 더 품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겠죠.

후분양으로 가면 아파트값이 더 비싸질 거란 우려도 있지만, 요즘 서울 규제지역(강남·서초·송파·용산구)을 제외하고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면서 매달 치솟는 분양가를 보면 선분양의 가격상 이점도 힘을 잃은 것 같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현재 분양가는 공사비와 토지가격, 임금과 인플레이션에 더해 최근 보수적인 시장 상황에 따른 리스크까지 반영돼 '30평대 10억선'이 떨어지기 어렵다"며 지금의 고분양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또 분양가가 비싸도 '오늘이 가장 싸고 나중엔 더 오를 것'이란 우려와 프리미엄(웃돈) 기대에 청약자가 몰려 분양가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고도 봤는데요.

이처럼 선분양제 자체가 분양가를 끌어올리고, 시장 상황 리스크까지 수요자가 떠안는 데다, 부실공사 우려까지 겹친다면 소비자도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선분양제는 주택보급률이 50~60%에 불과하던 시절 도입됐다는데, 현재는 102.2%(2021년 기준)로 사정도 다릅니다. 송 대표는 "이제는 후분양이 주택공급 트랜드의 변화를 가져올 때"라며 "그렇게 되려면 공공쪽에서 먼저 후분양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견본주택만 보고 십수 억에 집을 사는 지금의 선분양 제도는 정말 괜찮을까. 사진은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구의역 롯데캐슬 이스트폴' 견본주택 모습. 2023.7.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견본주택만 보고 십수 억에 집을 사는 지금의 선분양 제도는 정말 괜찮을까. 사진은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에 마련된 '구의역 롯데캐슬 이스트폴' 견본주택 모습. 2023.7.2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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