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현영 기자 =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에 이어 디지털자산 허브로 올라선 가운데, 기존 디지털자산 허브였던 싱가포르의 경쟁력에 맞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야직까지는 싱가포르가 앞서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중국 본토 자금이 흘러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성장 가능성은 홍콩이 더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블룸버그는 지난해 싱가포르와 홍콩의 가상자산사업자 라이선스 발급 건수를 비교해 '디지털자산 허브' 경쟁에서 싱가포르가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싱가포르는 오케이엑스, 업비트 등 가상자산 거래소와 비트고 등 커스터디(수탁) 기업을 포함해 총 13개 사업자에 가상자산 라이선스를 내줬다. 반면 홍콩은 절반 수준인 7개 사업자에 라이선스를 발급했다.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인 오케이엑스와 바이비트는 홍콩 라이선스 신청을 철회하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가상자산 라이선스를 더 많이 내준 점 △홍콩의 가상자산 상장 및 상장폐지 정책이 제한적인 점 △가상자산 거래가 금지된 중국의 영향력이 홍콩에서 더 큰 점 등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다르다. 싱가포르가 시장 초기 디지털자산 허브로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는 가상자산발행(ICO)이 허용되기 때문인데, 최근 몇 년 새 ICO를 위한 요건이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가장 큰 장점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영향력이 큰 점은 홍콩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평가도 있다. 중국에서 가상자산 거래가 전면 금지돼 있음에도 불구,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에 재직하는 중국인 수가 점점 늘고 있을뿐더러 가상자산 시장에 간접적으로 중국 자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면 홍콩이 가상자산 허브로 올라설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7년 발빠르게 ICO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증권형 토큰을 제외하면 발행 요건이 까다롭지 않았고, 2017년 말~2018년 초를 거치며 '가상자산 붐'이 일어난 덕에 싱가포르는 단숨에 'ICO 성지'가 됐다.
국내는 ICO가 금지돼 있으므로 가상자산을 발행하려는 국내 기업이나 한국인이 주축이 돼 설립한 프로젝트들도 모두 싱가포르에 법인을 세웠다. 'ICO 성지'가 된 것을 토대로 싱가포르는 글로벌 디지털자산 허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싱가포르는 지난 2022년부터 가상자산 기업에 대한 조사를 늘리며 규제를 강화하는 기조를 보였다.
2023년에는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싱가포르 지역 외에서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업자도 '디지털 토큰'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즉, 서비스는 싱가포르 외 지역에서 제공하고 가상자산만 싱가포르에서 발행하는 경우에도 반드시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AML 의무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싱가포르가 규제를 강화한 가운데, 홍콩은 국가적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키우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예지헝(Ye Zhiheng)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 중개 부문 전무이사는 지난해 11월 "가상자산은 전 세계 금융당국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면서 "홍콩은 현재 3개의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에 라이선스를 부여했고 15개의 신청 건을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후 SFC는 12월 4개 사업자에 추가로 라이선스를 부여하면서 지난해 총 7개의 라이선스를 내줬다. 라이선스 발급 건수 자체는 싱가포르보다 적지만 SFC 임원이 직접 나서 라이선스 신청을 장려할 정도로 기조가 열려 있다는 의미다.
중국 자금 유입 가능성은 홍콩의 강점 중 하나다. 중국은 가상자산 거래는 물론 채굴 등 관련 사업까지 전면 금지하고 있으나 업계에선 여전히 중국 본토 자금이 간접적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글로벌 진출을 추진 중인 국내 가상자산 기업 관계자는 "요즘 홍콩에서 행사가 자주 열리고, 업계 종사자들의 홍콩 출장이 잦아진 이유 중 하나가 중국과의 협업 가능성"이라며 "홍콩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다. 중국 본토 자금이 홍콩으로 유입될 것이란 기대에 홍콩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hyun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