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유엔참전국⑤] 콜롬비아, 중남미서 유일하게 참전

자국 경제 어려웠으나…인도적 대의명분 강조하며 '파병'
흑운토령 전투·금성진격작전 활약…정전협정 후에도 한국 머물러

6·25전쟁 당시 콜롬비아군 모습.(유엔평화기념관 제공) ⓒ 뉴스1
6·25전쟁 당시 콜롬비아군 모습.(유엔평화기념관 제공) ⓒ 뉴스1

편집자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유엔 22개국에서 195만7733명이 참전했다.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활약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은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2023년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한 달에 한번 총 21회에 걸친 ‘이달의 유엔참전국’ 연재를 통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활약상을 조명하고 기억하고자 한다.

(부산=뉴스1) 이유진 기자 =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6·25전쟁에 참전한 국가 ‘콜롬비아’.

콜롬비아 정부는 당시 자국 경제 사정이 어려웠으나 자유 우방을 지원한다는 인도적 측면과 유엔의 기본원칙에 동의한다는 대의명분을 강조하며 해군 파병을 결정했다.

1951년 5월 프리킷함 1척 파병을 시작으로 1955년 10월까지 프리킷함 3척을 번갈아가며 보내 참전했다.

해상초계작전, 보급선단 엄호, 함포지원사격, 대지함포사격, 소해정 엄호 등 소형 함정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육군의 경우 한국 파병을 목적으로 한 ‘바따욘 콜롬비아(Batallon Colombia)’ 보병부대가 만들어졌고, 미국의 지원 아래 1000명 이상 규모의 대대가 6·25전쟁에 참전했다.

유엔군 가운데 마지막으로 참전했던 콜롬비아 육군은 흑운토령 전투를 시작으로 회고개 전투, 초서리 전투, 400고지 전투, 불모고지 전투 등에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1951년 8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진 흑운토령 전투는 콜롬비아 대대가 참전 후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다.

이어 같은해 10월13일 콜롬비아 대대는 대치 중인 3만여명의 중공군을 상대로 금성으로 진격하는 작전에 투입됐다.

6·25전쟁에서 콜롬비아 대대가 사용한 반자동 카빈총. 콜롬비아 총사령부가 유엔평화기념관에 기증했다.(유엔평화기념관 제공) ⓒ 뉴스1
6·25전쟁에서 콜롬비아 대대가 사용한 반자동 카빈총. 콜롬비아 총사령부가 유엔평화기념관에 기증했다.(유엔평화기념관 제공) ⓒ 뉴스1

교통의 요지를 점령해 철의 삼각지 통제에 기여한다는 전략이었다. 철의 삼각지는 철원평야를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라진 곳으로 철원, 김화, 평강을 잇는 삼각지대다. 군사 요지로 6·25전쟁 때 치열한 격전지였다.

전투경험 부족과 병력 열세의 상황 속에서도 콜롬비아 대대는 회고개를 확보했고 이후 10월23일 금성을 완전히 장악했다.

콜롬비아 육군은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 이후에도 전선의 안정을 위해 경계태세를 유지하다 점차 병력을 줄여 1954년 10월 철수했다.

해군 또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후에도 한국해역에 머물다가 1955년 10월 임무를 마치고 철수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콜롬비아는 참전기간 동안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 1개와 각종 훈장 54개를 받았다.

oojin7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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