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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1등' 흥청망청 폐인?…"천만에, 중고차 사서 알뜰살뜰"

복권정보업체 행사…1등 당첨자 4명, 당첨금 10억~30억원
"용·부친 꿈꿔 당첨"…"당첨자 전용 엘리베이터 기억나"
"빚 갚고 저축…정서적 여유 따라오니 가족관계 좋아져"

(서울=뉴스1) 류보람 기자 | 2014-07-12 23:59 송고 | 2014-07-13 02:41 최종수정
11일 서울 모 호텔에서 복권정보업체 '로또리치'가 개최한 당첨자 최다 배출 한국기록 인증 기념행사에서 역대 로또 당첨자 4명이 취재진을 상대로 각자 얽힌 사연을 털어놓고 있다.(사진=리치커뮤니케이션즈) © News1


"가족들과 함께 고생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스쳤어요. 울컥했죠."
불과 2주일 전인 지난달 28일 제604회 나눔로또 1등 당첨의 주인공이 된 50대 가장 주영호(가명)씨.

주씨는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한 복권정보 사이트 '로또리치'로부터 당첨 전화를 처음 받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11일 오전, 수많은 직장인들의 꿈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로또 1등'의 행운을 실제로 거머쥔 주인공 4명이 한 자리에 모여 '역전' 너머의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들은 '로또리치'가 자사 회원 중 1등 당첨자 30명을 배출했다는 기록을 한국기록으로 등재하기 위한 기념식에 참석해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30~50대 남성인 이들은 당첨금으로 각각 10억~30억여원씩을 받았다.

◇"1등 당첨자 전용 엘리베이터 타 봤어요"…604회 1등 당첨자 주영호(가명)씨

주씨는 "지금도 말로만 듣던 1등 당첨자가 되었다는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다"며 "당시 상황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 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주씨는 당첨 연락을 받은 후 당첨금을 찾기 위해 KTX를 타고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NH농협은행 본사를 찾았다.

"1등 당첨금 때문에 왔다"는 주씨를 직원은 VIP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농협은행에는 복권 당첨자를 위한 전용 상담실이 마련돼 있다.

신분증과 당첨복권을 확인하고 서류를 작성한 뒤 주씨의 계좌에는 12억여원의 상금에서 세금을 제한 금액이 입금됐다.

생활고로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리고 사채까지 이용해야 했던 주씨는 당첨금으로 가장 먼저 1억여원의 빚을 청산했다.

"사표부터 내겠다"는 많은 이들의 꿈과는 달리 주씨는 행운으로 삶에 큰 변화가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주씨는 "경제적 불안을 해결한 것으로 만족한다"며 "부인도 이런 점을 이해해 준다. 단란했지만 생활고에 지쳐 팍팍해진 가족관계가 화기애애해졌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기석(가명)씨.(사진=리치커뮤니케이션즈) © News1


◇"뜻 펼치는 사업 시작했어요"…517회 1등 당첨자 이기석(가명·48)씨

2012년 10월27일 당첨금 26억5900만원(세전)의 주인공이 된 이씨는 당첨의 행운으로 인해 병마와 실직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주일 전쯤 아내는 집 근처 저수지에서 용 두 마리가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했다. 거실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게임을 하다 뜻밖의 소식을 접한 이씨는 안방에 있는 아내를 소리쳐 불러 기쁨을 나눴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이씨는 현장에서 부상을 입어 6개월을 병원에서 보냈다. 퇴원 후 회사는 퇴직을 권고했고 이씨의 간호에 매달리던 부인도 직장을 잃었다.

실직, 병원비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씨는 새 희망을 얻었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경력과 기술에 비해 열악한 처우를 받고 있는 게 안타까웠던 이씨는 당첨금으로 작은 건설 사업체를 꾸렸다.

수익을 내는 만큼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게 정직하게 배당하는 게 목표다. "아직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면서도 이씨는 "지난 연말 월급 외 '보너스'를 챙겨줬다"고 귀띔했다.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계획이다. 주씨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느긋해진 인생 설계, 지금이 좋아요"…501회 1등 당첨자 권도운(가명·34)씨

2년 전 여름, 반도체 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30대 초반의 권씨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다.

"당첨금 30억2520만원, 1등에 당첨됐다"는 전화를 장난이라 여긴 권씨는 짜증을 냈다. 지금의 권씨는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은 기분"이라며 웃고 있다.

미혼인 권씨는 주씨나 이씨에 비해 대출이나 부양 부담에서 자유로웠다.

처음으로 국산 중고차 한 대를 구매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명품 매장에도 들어가 봤다.

도도한 점원들의 태도와 핸드백 하나에 600만원이 넘는 가격에 뜨악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을 위한 선물로 액세서리 몇 가지를 구매했다.

당첨 사실은 현재까지도 어머니만 안다. 어머니에게 계좌정보를 알려주고 쓰고 싶은 데 쓰도록 했다.

큰맘먹고 밍크 코트 한 벌 장만할 만도 하건만 "어머니는 밥값, 교통비 등 소소한 지출만 하신다"고 권씨는 얘기했다.

1년 전쯤 회사를 그만둔 권씨는 충북 한 도시 번화가에 프랜차이즈 카페를 차렸다.

권씨는 "당첨 전에는 빨리 결혼해 부인과 힘을 합쳐 열심히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면서 "지금은 좀더 여유있는 마음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권씨는 "전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결혼 상대를 신중히 고려하게 된다"면서 "외모도 더 보게 됐다"며 웃었다.
한호성(가명)씨.(사진=리치커뮤니케이션즈) © News1


◇"부모님 빚 갚느라 악착같던 삶…이젠 주변 돌아볼래"…477회 1등 당첨자 한호성(가명)씨

40대의 한씨는 아직 미혼이다.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신 5억여원의 사업 빚을 갚기에는 벅찼다.

연로하신 부모님은 병원을 찾으시는 일도 잦았다. 한씨는 본업 외에도 2가지의 부업을 하며 악착같이 빚을 갚아 나갔다.

하루 두 시간씩 자며 일해 2억원 가량을 갚았을 무렵 체력적·정신적 한계가 느껴졌다. 한씨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주 2만원어치씩 복권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2012년 설 무렵인 1월21일, 눈을 붙이려다 말고 전화를 받았다. 복권정보회사 직원은 "세전 19억1900만원 가량의 1등 당첨금이 한씨 몫"이라고 말했다.

당첨 사실은 어디에도 알리지 않았다. 거금이 생겼다는 사실을 티내지 않으면서 어려운 형제나 친척을 조금씩 돕고 있다.

한씨는 "늘 마음을 짓누르던 빚을 갚고 나니 정서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고 어려운 이웃도 눈에 들어온다"며 "당분간은 그동안 돌보지 못한 건강을 좀 살필 계획"이라고 밝혔다.

4명의 당첨자들은 "당첨금이 거액이지만 평생을 무절제하게 살 만한 액수는 아니니 오히려 행운이 물거품이 될까 긴장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빚을 청산하고 주택, 부동산 등을 구입한 뒤 남은 당첨금을 은행에 보관하며 관리하고 있다.

"한 번의 행운이 더 찾아온다면 생계와 다른 용도로 써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최근 당첨된 주씨를 제외한 3명은 "그런 일이 있겠느냐"면서도 "전만큼 꾸준히 복권을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복권정보업체 관계자는 "당첨자들이 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던 30~50대 남성이라 흥청망청 소비하다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며 "당첨사실이 알려져 가족관계나 일상생활이 망가졌다는 보도를 많이 접한 만큼 요즘은 당첨사실을 배우자나 일부 가족에게만 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padeo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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