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식민사관' 논란을 시작으로 역사관이 고위공직자 주요 검증 사항으로 부각되면서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홍역을 치르는 중이다.
자신이 쓴 책에서 제주4·3항쟁을 공산주의자의 무장봉기로 규정한데다, '역사교과서 좌우논쟁'을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성향의 학술단체 한국현대사학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는 점도 표적이 되고 있다.
정 후보는 헌법학의 권위자면서 주요 일간지의 칼럼리스트로도 활약해왔다. 그가 쓴 칼럼을 보면 정치·역사의식 면에서는 보수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개별적인 현안에서는 개혁적인 면모도 보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 극찬…일본우익은 질타
그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는 칼럼은 2010년 4월19일자 한국일보에 실은 '4·19에 돌아보는 이승만'이다. 정 후보는 이 칼럼에서 4·19혁명 50주년를 맞아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승만에 가까이 접근하면 할 수록 많은 질문이 생긴다. 가장 쉬운 질문은 '역대 대통령 중에 이승만보다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는가'이다"라며 "프린스턴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육수준, 동서학문에 대한 박학함, 지식의 깊이, 역사의식, 청년기 문제의식, 독실한 실천, 글로벌리더로서의 수준, 국가철학, 위기극복 지도력 등에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극찬했다.
4·19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승만 이후 대통령들이 독재를 한 점은 없는가"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문창극 총리 후보와는 달리 한일합방 등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입장은 단호했다.
지난해 7월15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일본극우집단인 일본유신회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조선과 중국여성을 끌어가 성노예로 삼은 폐륜적 죄악에 대해 반성은커녕 이 여성들이 원한 것이라거나 미국도 그랬다는 식으로 천방지축으로 날뛴다"는 등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또다른 칼럼에서는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한 1910년 8월29일을 국치일이 아니라 '대분일'(大憤日)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DJ, 민주화나 찬양하고 통일타령 하며…"
정치적 입장은 이명박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3일자 서울신문에 쓴 '낡은 패러다임 확실하게 깨라'라는 이름의 칼럼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2007년 대선은 '10년 좌파정부'에 대한 심판이며 이명박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수구좌파'의 패러다임을 깨야한다는 게 요지다.
정 후보는 이 칼럼에서 김대중 정부는 "2년 채 못가 국정운영에서 실패하고 민주화나 찬양하고 통일타령이나 하면서 남은 시간을 때우고 이너서클 간에 권력을 나눠 가지다 물러났다"고 비판했다.
또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좌파운동의 전술과 전략을 동원해 정권을 잡았으나, 철지난 민주화 패러다임과 구시대적 사회주의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낡은 선전선동 기술을 이용한 정권유지, 이너서클 간의 아마추어적 국정운영으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여전히 낡은 사회주의적 가치관에 입각한 좌파수구주의"로 규정하고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혹평했다.
안전행정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고, 과거사 관련 지원 등 민주화운동 관련 업무도 고유영역이라 정 후보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역사·정치에서는 보수적이지만 사회 현안에서는 개혁적인 견해를 펼치기도 했다. 특히 교육문제에서는 진보적인 성향까지 비쳤다.
2009년 10월26일자 한국일보에 실은 칼럼 '특목고의 위헌적 횡포'에선 특목고를 "현대판 특수 귀족계급을 창출하는 수단"이자 "사회 통합을 아래로부터 붕괴시키는 사회적 모순"이라고 규정했다.
또 다른 칼럼에서는 빈부차에 따른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나 대학에 진할할 기회와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당장 모든 대학을 국립으로 무료화할 수는 없어도 등록금을 최소화하고 국가재정으로 보전해 돈 때문에 대학진학이 어렵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고 조영래 변호사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2000년 12월11일 조 변호사 별세 10주기를 맞아 동아일보에 기고한 '왜 조영래인가'라는 글에서는 "민주화에 사심없이 한 몸 던지고 간 지금에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라며 "구조적 모순과 폭압적 국가권력에 대해 누구보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대응한 '조영래식 실천'은 지식인의 삶의 한 모델을 남겼다"고 썼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소신 뚜렷
무엇보다 정 후보가 쓴 칼럼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소신은 '폐지까지 포함한 대통령제 개혁'이다. 법학자인 정 후보는 안행부의 주업무가 될 지방자치 행정에 대한 글은 거의 쓰지않았다. 다만 2003년 1월30일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권력분산 새 시스템 짜라'라는 이름의 칼럼은 대통령제와 지방자치에 대한 견해를 동시에 내비치고 있다.
정 후보는 이 칼럼에서 "건국 이래 한국 대통령은 왕처럼 군림하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둘렀다. 권위주의 청산과 제왕적 대통령의 타파는 국가발전의 최우선 과제"라며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여간 훌륭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는 한 구조상 독재자로 화할 위험이 상존한다"고 대통령제의 '위험성'을 역설했다.
또 "집중된 국가권력의 분산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지자체 상호간 등에 체계적으로 이뤄질 때 실현된다"며 "대통령 1인으로의 권력집중의 모순을 해결해야 할 우리에게 대통령과 총리간 역할을 재설정하더라도 국회와 대통령 간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유지되는 관계를 새로 설정하고 지역등권을 실천에 옮겨 국정운영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을 앞둔 2012년 8월2일자 전북일보 칼럼 제목은 아예 '대통령제를 폐기할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며 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내용이다.
이같이 대통령에 대한 권력 집중을 비판해온 정 후보가 장관이 될 경우 어떤 태도를 보일지도 관심사다.
2009년 한 칼럼에서는 공무원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헌법 내용을 모르는 공무원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공무원시험을 개선할 때 시험과 연수에서 헌법을 필수과목으로, 한국사도 시험과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관이 된다면 어떤 공무원 '용병술'을 펼칠지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
한편 "정치인 국무총리는 안된다"는 주장도 했다. 2006년 3월17일자 조선일보에 쓴 칼럼에서는 "임명직인 국무총리가 정치인을 겸하게 되면 실질총리제의 장점보다는 권력투쟁에 몰입하고 국회와 의사소통도 더 꼬이게 된다"며 "총리는 국정의 실질을 잘 아는 인사여야 하고 다음 행보를 계산하는 정치인이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까지 나오는 현재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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