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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곡역 방화범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보고 범행"(종합)

달리는 열차서 '펑'…승객·역무원 기민하게 대처
'묻지마 방화' 70대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보고 계획"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2014-05-28 09:11 송고
서울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사건 용의자 조모씨가 28일 오후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News1 양동욱 기자


서울 도심을 통과하던 열차에 70대 노인이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번 사고는 승객들의 기민한 대처와 살신성인의 역무원에 의해 초기에 진압됐다.

승객이 탑승한 열차에 불을 지른 방화범 조모(71)씨는 최근 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열차 추돌 사고를 보고 범행을 마음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범행 3일전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사전답사'를 마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달리는 열차서 '펑'…승객·역무원 기민하게 대처

28일 오전 10시51분쯤 매봉역을 출발해 도봉역으로 향하던 339편성 3339객차 4번칸에서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4번칸 경로석 사이에 놓인 검은색 가방 2개에서 시작된 불길은 객차 내 의자를 태우는 등 번지기 시작했다. 40~50명 승객이 탑승해 있던 열차는 도곡역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승객들은 "불이야"라고 외치는 동시에 경찰에 사고 관련신고 접수를 마치고 비상벨을 눌렀다. 이에 따라 기관사도 역시 사고사실을 인지하고 승객들에게 대피 안내방송을 진행했다.

같은 시간 우연히 해당 객차에 탑승한 서울메트로 직원 권모(57)씨는 승객들의 이같은 외침에 즉각 열차 내에 구비돼 있던 소화기를 꺼내 들었다. 승객들의 협조로 도곡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불길은 대부분 잡힌 상태였다.

안내방송을 진행한 기관사는 불이 난 4칸까지만을 도곡역에 진입시켰다. 이에 열차에 타고 있던 승객 중 100여명은 도곡역 승강장을 통해, 270여명은 지하철 선로를 걸어 매봉역으로 대피했다.

이 과정에서 서모(62·여)씨가 선로를 걷던 중 발목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 추가 인명피해는 없었다.

자칫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었던 이번 사고는 승객들의 발 빠른 대처와 살신성인의 역무원 권씨에 의해 큰 피해 없이 마무리됐다.

권씨는 "직원으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진화를 위해 노력했다"면서도 "승객들의 도움이 컸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최초 신고를 접수한 A(여)씨는 "화재가 발생한 객실 옆 칸에 있었다"며 "객실 사이 투명유리를 통해 옆 칸에서 불이 난 것이 보였고 사람들이 '불이야'를 외치기 시작해 즉각 119에 신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불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가 도곡역에 정차했고 안내방송을 통해 '기관사실 양 옆문으로 대피하라'는 방송이 나왔다"며 "이에 따라 잠시 기다렸다가 기관사가 있는 맨 앞칸 양 옆문을 통해 열차에서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28일 지하철 3호선 도곡역 방화사건으로 검게 그을린 열차가 서울 강남구 서울메트로 수서차량기지에 옮겨져 있다. © News1 양동욱 기자


◇'묻지마 방화' 70대 방화범, "상왕십리역 추돌사고 보고 범행 계획"

평일 많은 승객들이 탑승한 열차에 불을 낸 방화범은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추돌 사고를 보고 범행을 마음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 동부에서 25년간 유흥업소를 운영해온 조씨는 2000년 건물 내 정화조가 역류하며 영업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대해 조씨는 수차례 민원과 소송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지난 4월25일 광주고법으로부터 최종 판결 결과가 나왔다. 조씨는 판결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고 '억울함을 호소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조씨는 이날 광주의 한 페인트 가게에서 신나 11병을 구매했다. 이후 5월22일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 3호선 삼송역에 탑승하는 등 '사전답사'까지 마쳤다.

조씨는 광주로 내려갔다가 범행 3일 전인 26일 자신의 차량을 타고 서울로 상경했다. 인근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조씨는 사건 당일인 28일 오전 10시쯤 신나 11개, 부탄가스 4개, 과도 등이 든 가방과 함께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서 열차에 탑승했다.

도곡역에 열차가 가까워지면서 객차 내 승객 수가 줄어들자 조씨는 가방 속 신나 6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신나가 흘러나올 수 있도록 가방을 발로 슬쩍 미는 등 '묻지마 방화'를 감행했다. 신나 액체가 열차 내 바닥에 흐르자 조씨는 미리 준비한 라이터로 불을 당겼다.

불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번지기 시작했다. 서울메트로 직원 권씨가 소화기로 진화에 나서자 조씨는 또 다시 신나가 들어 있는 가방을 거꾸로 들어 신나 액체가 흐르게 하고 2차로 불을 질렀다. 이같은 조씨의 방화는 3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경찰조사 결과 조씨는 자신의 재판 결과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다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 사고를 접했고 '언론에 알려지기 위해서 범행장소로 지하철을 택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조씨의 차량에서는 재판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A4용지 두 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조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분신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범행 직후 상처 하나 없이 태연하게 역을 빠져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조씨는 부상자인 척 속여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부상자가 신원을 밝히길 꺼리고 기자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등 수상하다'는 119구급대원의 신고에 따라 11시44분쯤 조씨를 병원에서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조씨가 3차례에 걸쳐 연이어 방화를 시도하고 심지어 진화하는 역무원 권씨를 뒤에서 잡아 끌었다는 점에서 이번 범행이 '묻지마 방화'일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가 열차 4칸에 승객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며 "다른 사람을 해칠 의도가 있었냐는 질문에 조씨가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씨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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