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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급식소 1년

사람·동물 공존 위한 동물복지 성과…민관 거버넌스 성공사례로 '주목'
강동구, 시범사업에서 정식사업으로 편성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 2014-05-10 23:59 송고
강동구청 별관 옥상에 사는 강순이(제공:미우캣보호협회 '하나임')© News1

강동구청 별관 옥상 정원엔 조금 특별한 주민(?)이 산다. 난 지 두달쯤 된 새끼 고양이 '강순이'다.
지난달말 구청 직원이 외근을 갔다 어미 없이 우는 어린 고양이를 보고 잘못될까 데려왔다. 너무 어려 보호소엔 보내지 못하고 우선 옥상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강동'에서 한자를 따와 강순이라고 이름짓고 밥그릇과 집도 한채 놔줬다. 몇몇 직원들은 발걸음이 빨라지는 퇴근길 강순이를 보려고 굳이 옥상을 찾는다.

딱딱한 느낌을 주던 관청은 고양이와 공무원,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장소가 됐다. 강동구 사람들은 '길고양이 급식소' 도입 1년만의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길고양이 급식소 시행 1년
지난해 5월31일 구청 현관과 18개 동주민센터, 보건소 20곳에 길고양이 급식소가 문을 열었다. 배고픈 길고양이들이 와서 밥과 물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전국 최초로 선보인 이 특이한 급식소를 두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도입 사실이 알려지자 '세금으로 고양이 밥까지 먹여야 하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헤집는 길고양이는 동네에서 쫓아내야 하는 대상, 영물(靈物)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 탓이었다.
그러나 매일 몇통씩 걸려오던 "고양이 잡아가라"는 민원 전화는 급식소 시행 1년을 맞은 지금은 거의 없다. 부정적 민원이 10분의 1로 줄어든 대신 구청 홈페이지엔 사업을 응원하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고양이들도 달라졌다. 늘상 로드킬 위험에 시달리고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했던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피한다.

이제 강동구에선 급식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태평하게 그루밍(털을 고르는 행동) 하거나 몇마리가 무리지어 장난을 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강동구 관계자는 "시행 초기엔 밤에만 밥을 먹고 갔는데 요즘엔 낮에도 길고양이들이 제법 다녀간다"고 했다.
강동구 암사1동 주민센터 앞 길고양이 급식소(제공:강동구)© News1

사람에 대한 경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이다. 주민 고은선씨(여·27)는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했던 건 아닌데 집근처 급식소에서 밥먹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그냥 기분이 좋다"며 "지나가다 한동안 보다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20개로 시작했던 길고양이 밥집은 지난달 기준 47개로 두배 넘게 늘었다. 초기 관공서 위주로 설치했는데 요즘엔 일반 주택가, 도서관 등에도 진출했다.

◇길고양이와 공생 위한 'TNR 사업'에도 효과
급식소 덕에 '중성화 후 방사(TNR)'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TNR은 고양이의 무분별한 번식을 막고 고양이가 원래 살던 영역으로 돌아가 건강히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잡아서(Trap) 중성화 수술을 한 뒤(Neuter) 돌려보내는(Return) 사업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일생을 자기 영역을 지미켜 사는데 한곳에서 개체가 사라지면 다른 영역 고양이들이 다시 이 자리를 찾아 와 개체수가 되레 느는 '진공효과'가 발생한다. 안락사가 길고양이 문제 해법의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강동구 18개 동에 사는 길고양이는 2000~3000마리로 추산된다. 2008년 이후 매년 예산으로 약 200마리를 TNR 했지만 그동안 이들이 다시 제 영역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잡기 쉬운 어린 고양이를 위주로 TNR이 실시되는 것도 문제였다.

강동구가 급식소 운영 전인 지난해 1~5월 시행한 TNR은 62마리, 급식소 운영 뒤 7개월 동안은 148마리로 두배 이상 늘었다. 고양이들이 정해진 장소에 찾아오니 잡기 쉽고 다시 이들을 관리하며 모니터링하기도 쉬운 정책의 선순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강동구는 올해 TNR 개체를 250마리로 늘릴 계획이다.

◇민관이 함께 해법 모색

강동구 길고양이 급식소가 주목받는 것은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정책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제안했고 수차례 협의를 거쳐 결과물이 나온 민관 거버넌스의 성공사례라는 점이다.

급식소 사업은 만화가 강풀 씨를 시작으로 강동구 캣맘·캣대디(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돌보는 이들)의 제안과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 가능했다.

사업이 확정되고 급식소 제작이나 사료 공급에 구의 예산은 한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주민인 만화가 강풀 씨는 사료비로 1500만원과 밥그릇 등을 쾌척했고 지금도 연간 수톤에 이르는 사료는 지역 캣맘의 후원으로 댄다.

관은 취지가 좋은 사업을 받아들이고 행정적인 부분을 뒷받침했다.

사업 초기 우선 동주민센터 등 관공서에 급식소를 설치한 이유도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는 이유로 종종 발생하던 'XX 캣맘 폭행사건' 같은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강동구에서 1년 동안 급식소가 파손되거나 밥을 먹던 고양이가 해코지를 당한 사례는 없다.

캣맘들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천만원의 사료비와 지역 캣맘의 꾸준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급식소 관리를 맡고 있는 미우캣보호협회 김미자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갈등 없이 고양이들에게 밥을 줄 수 있는 것만도 고무적"이라며 "길고양이가 살기 힘든 곳은 사람도 살기 힘들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길고양이를 보는 눈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1년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길고양이 급식소는 올해 정식사업으로 승격됐다. 배정한 구 예산 1000만원은 시설물 유지관리 등에 쓸 예정이다.

정형기 강동구 생활경제팀장은 "문제가 있거나 역효과가 컸다면 사업을 계속할 수 없는데 주민들에게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민원이 줄고 다른 지자체도 관심을 보이면서 내부적으로도 고무됐다"고 말했다. 정 팀장은 "캣맘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일반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대구, 청주 상당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강동구에 급식소 사업의 노하우를 요청했다.
(제공:강풀 블로그)© News1

2012년 전국 지자체 최초로 동물보호과를 신설한 서울시 역시 강동구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길고양이 TNR 사업에 캣맘들을 정식 참여시키기로 했다.

캣맘 협의체를 구성하고 올해는 집중 군락을 정해 TNR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길고양이 급식소가 전국에 확산돼 동물복지의 새로운 전기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chach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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