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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파생시장, 추락 or 건전화?…규제 개혁 '주목'

거래량 1/5토막…당국 "의도한 것, 거래대금은 충격 적어"
증권업계 "파생시장이 마약도 아니고…대못규제 충격크다"
당국 입장변화 감지…박근혜 대못뽑기에 파생규제 손 볼듯

(서울=뉴스1) 강현창 기자, 이지예 기자 | 2014-05-06 02:51 송고
출처 : 한국거래소 © News1


지금으로부터 29개월 전인 2011년 12월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내 파생시장에 큰 충격을 줄 정책을 하나 발표한다.
바로 KOSPI200옵션의 1계약 승수를 5배로 상향한 조치다. '건전화방안'이라 이름붙여진 이 조치 이후 국내 파생시장의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는 게 증권가의 '볼멘소리'다. 실제 이후 국내 파생시장의 거래량은 세계 1위에서 9위로 줄었다.

이를 두고 한국거래소와 각 증권사는 너나없이 한목소리로 "한국 파생시장이 추락했다"다며 당국을 성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정말 대한민국 파생시장이 '추락'한 것일까?

◇ 금융당국, "파생시장 의도적으로 축소 중이다"
금융위가 파생시장 건전화방안을 발표할 당시 국내 파생시장은 그야말로 승승장구였다. 2010년 기준 거래량은 총 35억 계약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11년 8월5일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국채의 신용등급을 트리플A(AAA)에서 더블A플러스(AA+)로 내리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사태로 촉발된 국제적 증시폭락과 거래량 폭증이 결국 국내 파생시장에 규제도입의 필요성을 키웠다.
당시 금융위는 "8월 시장불안이 촉발된 이후 주요 상품의 거래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파생시장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소위 '왝더독'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는 발표와 함께 KOSPI200옵션의 승수상향에 나선다.

'왝더독'(wag the dog)이란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주식시장에서 선물시장(꼬리)이 기형적으로 거대화되면서 현물시장(몸통)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파생상품이 시장에서 존재하는 기능은 크게 두 가지다.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위험을 줄이기 위한 '헤지'(hedge)지 기능을 하거나, 기초자산의 가격변동을 예측해 그에 따른 수익을 추구하는 투기적 기능이다.

당시 국내 증시의 현물시장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17위에 불과하다. 세계 17위의 현물시장을 가진 나라가 세계 1위의 파생시장을 가지고 있는 점은 국내 시장이 헤지기능보다는 투기적 기능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 그해 5월12일에는 KOSPI200 풋옵션을 대거 매수한 일당들이 주가하락을 노리고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사제폭탄을 터트리기도 했다. '안전'을 중시하는 당국으로서는 큰 위협이었다.

이전 KOSPI200옵션의 1계약 금액은 프리미엄×10만(거래승수)원이었다. KOSPI200선물의 1계약 거래승수는 50만원이었다. 이에 당국은 건전화방안을 통해 KOSPI200옵션의 거래승수를 50만원으로 선물시장과 동일하게 상향했다.

해외시장에서도 동일한 기초자산의 선물과 옵션의 거래승수가 같은 것이 일반적이라는 게 그 이유다.

한편 금융위는 당시 조치로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감소할 것이라고 이미 예상했다. 현재의 거래량 감소가 원치 않은 부작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추가로 KOSPI200옵션시장에 집중된 유동성이 타 시장으로 분산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 선진화방안 '성공적'…파생시장 다양화 진행
2012년 서울국제파생상품컨퍼런스에 참석한 당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국내 선물·옵션 등 장내파생상품시장의 거래량은 세계 1위임에도 파생시장이 현물시장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당시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현재 KOSPI200 선물·옵션에 편중된 구조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건전화방안을 도입한 당국의 의도처럼 국내 파생시장의 규모는 착실하게 덩치를 줄여나가는 중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파생시장 거래량은 총 8억2066만계약이다. 지난 2011년 39억2795만 계약에 비하면 79% 감소한 것이다. 얼핏 이 숫자만 본다면 국내 파생시장은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거래대금을 기준으로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줄긴 했다. 2011년 파생시장의 거래대금은 총 1경6442조2073억원을 기록했지만 2013년에는 총 1경1820조5946억원으로 28% 줄었다. 그러나 거래량이 크게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거래대금의 감소 폭은 크지 않다.

실물시장의 거래대금과 비교하면 오히려 증가했다. 2011년 코스피 거래대금은 1702조603억원이며 2013년에는 986조3752억원으로 42%나 줄었다. 이 기간 코스피거래대금 대비 파생시장 거래대금 비율은 966%에서 1198%로 늘었다. 처음 건전화방안을 도입한 당국입장에서 본다면 갈 길이 아직 먼 것이다.

한편 KOSPI200옵션에만 집중됐던 파생시장의 불균형 현상은 크게 개선됐다. 2011년 KOSPI200 콜옵션은 총 19억6810만1200계약, 풋옵션은 17억356만1058계약을 기록했다. 각각 전체파생시장 거래량 대비 50%, 43%를 차지했다. 사실상 대부분의 파생계약이 KOSPI200옵션에 집중된 셈이다.

그러나 2013년에는 KOSPI200 콜옵션은 총 3억433만5020계약, 풋옵션은 2억7612만5344계약으로 줄었다. 전체 시장에서의 비율도 37%, 33%로 감소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파생시장 거래량이 거래승수 인상 전보다 1/5토막이 난 것은 정확하게 의도한 대로 나온 결과"라며 "거래대금은 상대적으로 크게 줄지 않아 시장이 추락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 업계 "파생시장은 마약 아냐"…당국도 규제완화 검토 움지임
당국의 입장과 업계의 입장은 서로 다르다. 규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너무 급격하게 거래량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거래량에 따른 수수료를 주 수입으로 하는 입장에서도 당국의 단호한 입장은 달갑지 않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선물옵션 시장이 기관의 차익거래를 위한 것이다 보니 정보력이 낮은 개인투자자한테 적당한 상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문제는 그렇다면 당국의 규제가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만 개인투자자보다 기관투자자 감소가 더 큰 걸로 나타나면서 규제가 과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로스 그레고리 맥쿼리증권 한국주식시장그룹 대표는 '한국의 파생상품-규제와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파생시장 규제에 나설 때는 규제 강도와 자연스러운 시장진화 사이의 균형, 투자자 설명과 교육, 글로벌 경쟁력 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며 "신뢰할 수 있는 자본배치를 위해서는 당연히 규제가 필요하지만, 파생상품은 복잡하고 위험한 상품이기 때문에 섬세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증권사의 입장은 더욱 비판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마약시장 같이 안좋은 시장이면 몰라도 기존의 정상적인 규제와 테두리 범위 안에 있는 정규시장이 지금처럼 크게 감소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며 "파생시장을 키우는데 들인 공과 노력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면서 이제는 규제를 풀어도 다시 정상화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업계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에 희망을 걸고 있다. 최근 정부는 박 대통령의 '규제 대못 뽑기'지시에 따라 금융경제는 물론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각종 규제에 대한 완화정책이 논의 중이다. 이에 그동안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던 금융당국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명선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과장은 "파생시장 건전화방안은 거래량을 줄이는게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결국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규제와 관련해서 조만간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당국은 파생시장 건전화방안에 대해 손볼 것이 없다던 입장이었다.


khc@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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