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죽음 앞 세월호 승객·송파구 세모녀…곁에 정부는 없었다

[세월호 침몰]1인당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후진국형 비극 잇달아
자살률·교통사고 사망률·산업재해사망률 1위 등 곳곳 '죽음의 위협'
"압축성장의 그늘" "리더십 부재" "부패문화 단호한 엄벌" 등 목소리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2014-04-21 05:56 송고 | 2014-04-21 07:15 최종수정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 사고 사흘째인 18일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경기 안산 단원고 이다운(17) 학생의 빈소가 마련된 안산 한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이 조문을 하며 유족을 끌어안고 있다. 2014.4.18/뉴스1 © News1 송은석 기자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나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조계종 노동위원회와 시민단체는 광화문에서 한 가족의 49재를 열었다. 이날은 바로 지난 2월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송파구 세 모녀'가 눈을 감은지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세월호의 피해자들과 사연은 다르지만 최근 정부의 미흡한 대응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절실할 때 정부는 곁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 모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세월호 승객들은 제대로 된 구조도 받지 못한 채 해저에서 사투를 벌였다.

OECD 회원국 중 경제규모 10위의 위상을 가진 한국에 빈곤층의 연쇄적인 자살과 세월호 침몰과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원로작가 박범신씨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전히 우울, 불안, 분노, 수치심이 날 괴롭힌다. 단지 여객선 침몰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더 절망감이 든다"며 "GDP만 늘었지 우린 아직 50%의 야만 속에서 살고 있다"고 글을 올려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이날 2시 현재 64명이 사망하고 238명의 승객이 실종된 상태다. 지난해부터 보면 충남 태안 안면도 해병대 캠프 사고 사망 5명, 노량진수몰사고 7명,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10명에 이어 '인재' 사고로 계속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 1인당 국민소득 2만6205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번 사고로 "삶의 질에서는 아직 후진국"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18일 세월호 침몰 사고를 두고 "한국이 전쟁 이후 겪은 최대의 재해"라고 보도하는 등 외신 역시 한국의 세계적 평판과 걸맞지 않는 이 사건에 적지 않게 놀란 반응이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세월호 침몰사고는 한국의 현대화 수준을 묻는 시험”이라고도 했다.

실제 이번 사고는 192명의 사망자를 낸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보다 더 심각한 '21세기 국내 최고 대형사고'로 기록될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 국내 선박 사고만 쳐도 330명이 희생된 창경호 침몰 사건(1953), 323명이 희생된 여객선 남영호 침몰사건(1973), 292명이 희생된 서해 페리호 사건(1993) 등에 못지않은 비극적인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과거에 비해 경제규모가 급성장한 지금까지도 비슷한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의 49재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봉행되고 있다. 조계종 노동위원회와 빈곤사회연대는 지난 2월 서울 석촌동에 있는 집에서 생활고를 겪다 숨진 채 발견된 세 모녀의 넋을 기리고 빈곤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2014.4.15/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이같은 재난 외에도 한국은 군데군데 삶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주요한 삶의 지표에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가 중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자살률 세계 최고'는 대표적인 오명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이후 10년 동안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OECD는 '한눈에 보는 사회상 2014'(Society at aglance 2014) 보고서에서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33명으로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며 1990년부터 2010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며 "특히 노인 자살률이 높은데, 65 세 이상 자살률은 10만명당 약 70명으로1990년 대비 5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OECD 밖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비슷한 결과다. 2008년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106개 국가 중 그린란드,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다. 그린란드는 덴마크 령의 자치정부이고, 리투아니아는 인구 300만명의 작은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의 순위는 더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또 젊은이들의 자살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험개발원이 지난해 4월부터 지난 3월까지 생명보험 가입자 중 가족 등의 사망으로 보험금을 지급한 사례를 분석했더니 10대와 20대, 30대 사망자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산업재해 사망률도 OECD 국가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2012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예방대책'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수는 1.01명. 0.20명인 일본, 0.16명인 독일 등에 비해 역시 후진국 수준이다.

치안이 비교적 안정됐다면서도 살인 범죄에 의한 사망률 또한 높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치안 복지 경제성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살인범죄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2.2명으로 OECD 평균인 2.16명보다 높다. 전체 29개 국가 중 멕시코, 미국, 터키, 스위스, 핀란드, 스웨덴, 슬로바키아, 체코에 이어 9위다.

교통사고 사망률 역시 2010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 당 114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암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양호한 수준이나 최근 10년 증가율은 두번째로 높다. 1990년과 2011년의 암 사망률을 비교하면 OECD 국가 평균 14%가 줄어든 반면 한국은 6%가 늘어나 11% 증가한 브라질에 이어 2위였다.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촛불기도회'가 열리고 있다.여객선 침몰 사고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바램이 전 국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2014.4.17/뉴스1 © News1 송은석 기자

이같은 경제규모와 삶의 질의 불일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압축성장으로 이룬 경제의 규모에 비해 우리 사회의 시스템과 리더들의 책임의식이 여전히 뒤쳐지는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월호의 선장을 비롯해 승무원들은 승객을 놔둔 채 배를 이탈해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는 그동안 사회의 모범이 돼야할 정치·사회 리더들이 보여준 실망스런 윤리의식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벌써부터 법·제도를 보완하는 사후대책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적지않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지금 우리 사회는 육체는 어른이지만 이를 견인할 정신은 매우 허술한 유아적 수준"이라며 "안전과 방재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계기로 삼는 것도 중요하지만 리더들의 책임윤리를 되묻는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부패구조 강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도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발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지수'(CPI)는 177개국 46위로 2010년 이후 3년째 떨어지고 있다. 3년전 39위에서 7위가 하락했다. OECD 34개 국가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이번 세월호 사고도 이런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정부가 해상운수사업법상 여객선 사용연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세월호가 운항이 가능하도록 한 무분별한 규제완화도 일종의 부패의식적 행정의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국민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기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우선시하는 풍토는 부패문화와 연결돼있다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한국의 경제규모와 사회적 질의 괴리는 비리·부패적 의식의 강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 과정의 투명화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자를 엄격하게 징벌하는 문화가 수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nevermind@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