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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여승무원 "끝까지 남아 대피 도와"

[진도 여객선 침몰] 승객 먼저 대피…사고위험 장소 지키며 "조심하세요"
선원 "배에서 10번 만나면 10번 다 웃으며 인사…안타깝다"

(목포=뉴스1) 박현우 기자 | 2014-04-16 12:14 송고 | 2014-04-17 00:16 최종수정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SEWOL)가 침몰되자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높은 데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배가 급격히 기울고 있었다. 16일 오전 세월호에 타고 있던 김종황(59)씨는 남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비상구를 빠져나왔다.


배에서는 남승무원과 여승무원이 끝까지 남아 승객들이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돕고 있었다.


여승무원이 눈에 익었다. 사고 1시간여 전인 오전 8시. 선실 내에 전구가 떨어져 있어 주워 끼우다 새끼 손가락을 베었을 때 다가와 밴드를 붙여줬던 여승무원 박지영(22)씨였다.


지영씨는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른 상황에서 매점 문이 바다쪽으로 향해 열려 승객이 그 틈으로 빠지자 남승무원과 함께 매점 문을 닫고 문고리를 채워 승객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끝까지 그 근처에 남아 승객들에게 "이 곳을 밟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승객 대피를 도왔다.


김씨는 지영씨가 뒤따라 빠져나왔을 거라 생각하고 가까스로 구명정에 올라탔다.


이마와 몸 군데군데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어 목포 한국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김씨는 한참 뒤에야 지영씨가 숨졌다는 걸 알았다.


같은 병원에서 만난 강모(58)씨도 여승무원 한 명이 끝까지 승객 대피를 도왔다고 했다.


그는 "여승무원 한 명이 끝까지 남아 침착하게 대피를 도왔다"며 "배가 기우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머리에서 피가 좀 많이 났는데 여승무원이 두리마리 휴지를 건네 줬다"고 회상했다.


16일 사고로 숨진 승무원 박지영씨.© News1 박현우 기자


지영씨는 2012년 수원과학대 1학년으로 재학 중 휴학계를 내고 승무원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10년 아버지가 간질환으로 돌아가신 뒤 어머니와 당시 고등학교를 다니던 여동생과 생활을 하게 돼 가정형편이 넉넉치 않았다.


어머니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사촌오빠 소개로 배를 타기 시작했다.


쾌활하고 활발한 성격이었던 지영씨는 승무원 생활을 하며 늘 웃는 모습으로 어른들을 대했다.


선원 오모(58)씨는 "젊은 사람이 사글사글하고 인사성도 밝아 배에서 오다가다 10번 만나면 10번 다 인사했다"며 "항상 생글생글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깝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가족 어른들도 때때로 모셨다.


16일 병원 근처에서 만난 지영씨 이모부 김모(61)씨는 지영씨 덕분에 제주도 여행을 자주 갔다고 했다.


김씨는 "설이나 추석 때면 늘 찾아와 어른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며 "지영이 덕분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도 몇 번 갔는데 갈 때마다 지영이가 어찌나 살뜰히 챙겨주던지 조카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현재 지영씨 시신이 안치돼 있는 목포 한국병원에는 지영씨 어머니와 이모들, 이모부 등이 도착해 있다.


이날 오후 병원에 도착한 지영씨 어머니는 지영씨의 시신을 확인한 뒤 쓰러져 링거를 맞기도 했다. 고인 얼굴에서는 여기저기 작은 상처가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녁 8시 현재 숨진 박지영씨 빈소는 차려져 있지 않은 상태다. 유족에 따르면 빈소가 차려질 장소는 나머지 실종 승무원의 생사가 확인된 후 결정할 예정이다. 지영씨가 나고 자란 인천에 차려질 가능성도 있다.






hw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