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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규제 2년…대형마트도 전통시장도 '울었다'

[실효없는 유통규제①]전통시장 활성화? 외국계SSM만 활개
쇼핑선택권 제한된 소비자들 "장보기줄여"...소비만 위축시켜

(서울=뉴스1) 백진엽 기자 | 2014-02-12 23:09 송고
© News1 류수정 디자이너


"대형마트 영업규제요? 별 상관없어요. 이 앞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가 들어서기전부터 여기서 장사를 했는데, 마트가 들어섰다고 손님이 크게 줄지도 않았고 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했다고 매상이 늘지도 않았어요."
서울 청량리역 인근에 위치한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상인 K씨의 말이다. 시장 바로 옆에는 대형마트가 자리해 있었다. 서울시가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제한한 이후 매상이 어떠했는지를 묻자, 그는 대뜸 "솔직히 백화점, 대형마트를 가는 사람이랑 전통시장에서 장보는 사람이랑 어느 정도 나뉘어져 있지 않나요? 우리 딸도 아이를 데리고는 전통시장 가기 어렵다며 마트를 간다고 하더라구요"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규제가 시작된지 2년이 지났다. '전통시장 활성화' 취지로 시작된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시간을 규제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시간이 줄어든 대형마트의 매출이 줄어든 것은 당연했고, 대형마트 규제로 반사이익이 생길 것으로 기대했던 전통시장 매출도 되레 감소했다. 소비자들 역시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얼마전 서울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수퍼마켓(SSM)의 영업제한시간을 '자정~오전 8시까지'에서 '자정~오전 10시까지'로 변경하고, 복합쇼핑몰내 대형마트도 휴점하도록 구청에 독려했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지난해말 발의한 대형마트에서 특정품목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유통법 개정안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지난해 4월 서울시가 추진하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정책과 대동소이하다.

◇'승자없는 게임'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지난 2011년 12월 30일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일과 시간을 제한할 수 있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2012년 2월 전주에서 조례안을 공표하면서 대형마트와 SSM의 영업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만 2년이 지났다.

규제 취지는 전통시장 활성화, 나아가서는 공익이다. 2011년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때도, 이듬해 2월 전주에서 조례안을 공표해 처음으로 규제가 시작됐을 때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최근 헌법재판소도 유통법 위헌 여부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과 근로자의 건강권 등 공익달성의 필요성이 크다"고 각하 이유를 판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형마트 규제로 이익을 보는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다. 즉 '대형마트 영업을 막으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가겠지'라는 추측만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탁상법안' 사례라는 것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 영업제한 이후 소비자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고 전통시장 경기는 여전히 어렵다"며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마트 매출액은 10조7801억원으로, 2012년에 비해 1.5% 감소했다. 국내실적만 따져보면 감소폭이 더 크다. 지난해 이마트 국내 매출액은 3.5% 가량 줄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국내 매출이 6조4000억원으로 0.1% 감소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매출이 역성장한 것은 창사이래 처음이다. 홈플러스도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매출액이 전년동기보다 4.8%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마트3사의 지난해 매출 감소액은 1조원이 넘는다.

그렇다고 규제의 수혜를 입어야 할 전통시장이 살아난 것도 아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통시장 매출 규모는 2011년 22조1000억원에서 2012년 21조1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매출은 더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온누리상품권 판매도 2012년 4260억원에서 2013년 2900억원으로 오히려 32% 급감했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생산자들의 피해도 막대하다. 한국유통생산자연합회(이하 한생연)는 영업규제 2년동안 대형유통사에 납품하는 농어민, 중소기업, 임대상인들이 연간 3조원 규모의 매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임대매장 주인은 "사실 거리에 매장을 오픈한 사람보다 우리처럼 마트에 임대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더 영세상인"이라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명목하에 마트 임대 영세상인들은 모두 죽이려는 형평성 없는 규제"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소비자들의 불편과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유통산업 규제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천문학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온라인몰과 외국계SSM 매출만 '쑥쑥'

공휴일 영업금지 등 대형마트 영업제한이 실시되면서 장보기가 불편해지는 쪽은 소비자들이다. 장을 보기 위해 무심코 대형마트에 갔다가 허탕친 경험이 있는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이 아닌 온라인쇼핑몰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결국 온라인쇼핑몰이 대형마트 규제 수혜자인 셈이다.

실제로 온라인쇼핑몰은 최근 2~3년 사이에 매년 10% 넘게 성장했다. 스마트폰 대중화 영향으로 온라인 시장 자체가 커지는 이유도 있지만,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영향도 컸다. 영업규제 등으로 대형마트에 가기 어려운 소비자들이 온라인몰을 대체재로 선택한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최근 온라인몰에서 대형마트의 주력상품인 생활필수품과 신선식품 등의 판매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계 SSM도 대형마트 규제로 인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일본계 마트인 트라이얼마트와 바로마트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내 대형마트와 SSM이 규제에 묶여 출점을 못하는 틈을 타 부산을 비롯한 영남권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2010년 6개였던 이들의 매장은 지난해 14개까지 늘었다. 3년새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매출도 두 곳 합쳐 2010년 400억원 수준에서 지난해 약 1000억원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또 있다. 대형마트 규제가 소비 활성화는 커녕 소비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쇼핑의 선택권이 줄어든 소비자들은 아예 쇼핑하는 횟수를 줄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주부 H씨는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그렇고 마트가 문을 닫았다고 해서 전통시장에 가서 사지는 않는다"며 "마트가 영업을 하지 않을 때는 '그냥 안먹는다'는 생각으로 쇼핑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두부나 콩나물 등을 마트에서 사지 못한다면 그만큼 사먹지 않게 될 것"이라며 "꼭 필요하면 가까운 동네 식품가게를 찾지 굳이 전통시장까지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규제는 경제적으로 손실이 있더라도 전통시장이라는 약자를 살려야 한다는 개념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입안자들도 후생 손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복잡한 경제사회 문제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풀려고 한 것으로, 과거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도 실패한 규제"라고 설명했다.

신 부연구위원은 이어 "일본도 과거 대형 유통업체를 규제하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음을 깨닫고 2000년 규제를 모두 푸는 대신 도시상권활성화 제도를 도입했다"며 "강자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상권을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단순히 전통시장에 주차장을 지어주는 개념이 아니라 각 지역 소비자의 특성부터 해당 상권의 강점 등 소프트웨어까지 연구해 상권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규제 중심의 접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실패가 보이는 정책을 오래 끌고 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jinebit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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