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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야사]'휴대폰 원조' 모토로라, 공중분해…"굿바이~"

(서울=뉴스1) 허재경 기자 | 2014-01-31 16:45 송고 | 2014-02-02 01:04 최종수정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 상업용 휴대폰 '스타택 8000X' 출시 등에 성공하면서 휴대폰 원조기업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스마트폰의 적기 대응에 실패, 2014년1월 구글과 레노버에 분리 매각되는 비운을 맞이했다.© News1
"나는 지금 진짜 셀룰러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다네. 휴대폰 말일세."

1973년 4월3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마틴 쿠퍼 모토로라 선임 기술자가 당시 라이벌이었던 조엘 벨 연구소 소장에게 전한 멘트는 인류 최초의 휴대폰 통화로 기록돼 있다. 모토로라에 '휴대폰 원조 기업'이란 닉네임이 붙여진 이유다.

그로부터 41년. 세계 휴대폰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이 모토로라가 치욕적인 종말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11년 8월 구글에 넘어가더니, 이젠 다시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레노버에 헐값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팔렸다. 그것도 온전히 매각된 게 아니다. 특허와 연구개발(R&D) 센터는 구글에 남았고 생산시설과 경영권, 지분 등만 레노버에 넘어갔다. 공중분해 형태의 분리 매각으로, 휴대폰 원조 기업이었던 모토로라 명맥도 사실상 끊어졌다.

◇ 무전기에서부터 카폰, 상업용 휴대폰도 세계 최초
1928년, 미국 시카고에서 가정용 라디오 부품 제조업체로 시작한 모토로라는 직접 라디오 완제품 생산에 나서면서 사세를 키웠다. 이 기술력을 기반으로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의 워키토키 무전기와 더불어 카폰(1946년)도 개발, 모바일 전화 상용화에 한발 더 다가간다.

이후 1969년 달나라에 간 암스트롱이 모토로라 무선통신기로 "달에 착륙했다"는 교신에 성공하자, 모토로라 창업주(폴 갤빈) 아들이자 당시 최고경영자(CEO)였던 로버트 갤빈은 휴대폰 도전에 마음을 굳힌다.

모토로라는 1973년 마침내 휴대폰 개발에 성공하고 상용화를 위해 10년간 1억달러에 달하는 거금까지 더 쏟아 부었다. 세계 최초 상업용 휴대폰인 '다이나텍 8000X' 출시(1983년9월)는 이런 인고의 과정 끝에 탄생한 산물이었다.

◇ 스마트폰 적기 대응 실패…결정적 패인

이런 기술력 덕분에 모토로라는 1990~200년대 초반, 연타석 대형 홈런을 날린다. 1996년 선보인 폴더 방식에 88g의 무게로 선보인 '스타택'은 세계 시장에서 6000만대나 팔려 나갔다. 결정타는 역시, 2003년 출시된 '레이저'였다. 스타택에 날카로운 금속을 입힌 이 레이저의 누적 판매량은 무려 1억4000만대에 달했다.

하지만, 모토로라의 전성시대는 거기까지였다. 과거 명성에 취해, 빠르게 변해간 트렌드를 읽지 못했다. 무엇보다 디지털 통신은 물론이고 이메일 송수신 기능도 보유했지만 오늘날 대세로 자리한 스마트폰으로 엮어내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이 나태함은 모토로라를 2007년 등장한 애플발(發) 아이폰 쓰나미에 휩쓸려 나가게 만들고 말았다. "모토로라가 2G에서 3G로 바뀐 전환과 애플리케이션 및 서비스 중심으로의 변화를 놓쳤다"고 전했던 그렉 브라운 전 모토로라 CEO의 자책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후회였다.

모토로라는 2011년8월 구글에 125억달러에 인수된 이후에도 삼성전자와 애플 등 기존 강자들에 밀려 좀처럼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모토로라는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연구개발(R&D)과 특허는 구글에게, 생산시설 및 경영권 등은 레노버에게 각각 분해되는 굴욕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모토로라 브랜드의 휴대폰이 다시 출시될 지는 미지수지만, 정통성이 사라진 건 분명해 보인다.


heo095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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