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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가기 싫다"던 여중생 돌려보낸 '아저씨' 경찰

택시비 안내고 도망치다 경찰행…경찰, 타일러 귀가조치
장선구 순경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줘야 한다는 생각 뿐"

(서울=뉴스1) 맹하경 기자 | 2014-01-06 05:48 송고 | 2014-01-06 06:12 최종수정
장선구 순경 © News1

"얘 좀 어떻게 해줘요."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각. 택시기사 A(51)씨가 서울 동작경찰서 안으로 한 소녀와 들어왔다. A씨는 택시비도 없이 차에 탄 B(15)양을 혼쭐내려 했지만 오갈 데 없어 보여 경찰서로 데려왔다고 했다.

A씨는 이날 0시40분쯤 서울 중랑구 상봉역 근처에서 이 소녀를 태웠다. 앳된 얼굴에 짙은 화장이 여간 어색하지 않던 소녀는 택시 안에서 내내 안절부절못했다.

소녀의 불안한 모습은 이내 말 바꾸기로 드러났다. B양은 택시에서 "좌회전, 우회전, 유턴"을 반복하며 택시를 목적지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게 했다. 결국 동작구 대방동 근처에서 내릴 때는 택시비가 2만5000원에 달했다.

하지만 B양의 손에 들린 돈은 2000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맹랑했다. "아저씨, 거스름돈은 괜찮아요"라며 후다닥 택시 밖으로 튀어나간 소녀는 곧 A씨에게 붙잡혔다.
그렇게 15살 소녀는 동작경찰서까지 와 장선구(29) 순경을 만나게 됐다.

A씨는 "아이를 부탁한다"며 자리를 떴다. 장 순경과 B양이 오롯이 마주하게 된 순간이다.

장 순경은 소녀를 편안한 의자에 앉히고는 걱정어린 눈으로 천천히 들여다봤다. 살피려는 눈길이 어색해서였을까. 소녀는 연신 고개를 땅에 떨구고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장 순경의 어르고 달래기가 시작됐다.

장 순경은 "무슨 일 있었니"부터 시작해서 "집에 가기 싫은 거니 아니면 집에 갈 수 없는 거니", "춥진 않니" 등 타이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소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홍대로 가는 길에 차가 끊겨서 집에 돌아가려 택시를 타긴 했는데 돈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었다"던 소녀는 이내 "집에 가기는 싫다"고 털어놨다.

장 순경은 연신 자신을 '아저씨'라고 칭하며 "아저씨가 부모님과 연락해 볼게", "아저씨가 집까지 잘 데려다 줄게" 등이라고 소녀를 안심시켰다.

입을 앙다물고 집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소녀에게 정 순경은 단 한번도 윽박지르지 않았다.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소녀가 답답할 터인데 '아저씨'는 침착하게 기다려줬다.

결국 "집에 들어가야 아저씨가 걱정 안하지"라는 정 순경의 뒤를 소녀는 쪼르르 쫓아갔다.

그래도 순경판 '아저씨'는 달랐다. 소녀를 데려다 줄 순찰차 문을 열어주면서 정 순경은 "그래도 나쁜 일 한거야"라며 "택시기사님들은 태워 주는 게 일인데 그 값을 지불하지 않는 건 잘못된 거야"라며 따끔한 한 마디도 빼놓지 않았다.

이날 새벽 3시쯤 경찰서를 나선 소녀는 집으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아이 걱정에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는 전화를 걸어 "순경 한 분이 보호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어요"라고 급하게 말했다.

집으로 안전하게 귀가시켰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옅은 떨림까지 느껴졌다.

이유도 없이 "집이 싫어요"라던 소녀는 새벽 어스름과 함께 따뜻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날 이 소녀는 자신을 알아주려는 따뜻한 눈빛의 정 순경을 만났다.

소녀를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정 순경의 머릿속엔 단 한마디만 들어 있었다. 요지부동이던 아이를 가리키며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순경이 미소와 함께 내놓은 답이 모든 것을 대신했다.

"제가 할 일은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거죠"


hw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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