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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인생역전' 억만장자들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4-01-02 02:32 송고 | 2014-01-02 02:41 최종수정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CEO© AFP=News1

돈이 돈을 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타고난 재산이 많다고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세계를 통틀어 억만장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미 온라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1일(현지시간) 어린 시절 불우했던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들을 소개했다. 이들 중에는 미국에서 대형 의류기업을 일군 한국계 미국인도 포함돼 있다.

스타벅스라는 커피 제국을 키운 하워드 슐츠 최고경영자(CEO)는 과거에 영국 일간지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자라면서 나는 항상 트랙의 한 쪽(빈민가)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재원과 더 많은 돈, 더 행복한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슐츠는 이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펜스를 넘어가서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위에 있는 어떤 것을 획득하길 원했다. 나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다니지만 내가 어디 출신인지를 안다"고 털어놓았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슐츠에게 빈민가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운동밖에 없었다. 그는 미식축구 장학금으로 받아 운좋게 노던미시간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졸업 후에 제록스에서 세일즈맨으로 입지를 굳힌 그는 투자자들을 설득해 스타벅스 커피체인을 인수했다. 당시에는 매장 수가 60개밖에 되지 않았다. 슐츠는 1987년에 CEO가 됐고 매장 수를 전세계적으로 1만6000개로 늘렸다. 그의 순자산은 20억달러(약 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의류업체 포에버21의 공동창업주인 장도원(자산 50억달러)도 자수성가형 CEO이다. 1981년 부인인 장진숙과 미국으로 이민간 그는 1984년 창업하기 전까지 경비와 주유소 직원, 커피숍 직원으로 3가지 일을 동시에 했다. 고생은 결실을 맺었다. 전세계에 480개 매장을 두고 있는 포에버21의 연 매출액은 30억달러에 달한다.
조지 소로스 © AFP=News1


유대계인 조지 소로스(200억달러)는 유년시절 나치 치하 헝가리에서 농업부 직원의 양자로 입적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1947년에는 헝가리를 떠나 친척들이 있는 런던으로 이주해 웨이터와 기차역 짐꾼으로 일하면서 학업(런던정경대학 졸업)을 마쳤다. 졸업 후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다가 뉴욕에 있는 은행에 취직했다. 1992년에는 영국 파운드화 하락에 배팅해 수십억달러를 벌었다.

억만장자 사업가 존 폴 드조리아(40억달러)는 1950년대 초, 10살이 채되기도 전에 이민자 가족들을 돕기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문을 팔아야 했다. 이후 양부모 집에 맡겨진 그는 군 입대 전에는 범죄조직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는 전역 후 700달러를 대출 받아, 헤어 전문업체 존 폴 미첼 시스템스를 창업해 차에서 살면서 샴푸 외판원 생활을 했다. 판매와 마케팅을 매일 가정집 문을 수백번 두드리면서 배웠다. 이후에 패트론 데낄라사업을 시작했고 다른 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카지노 업계 거물인 커크 커코리언(39억달러)은 아르메니아에서 건너온 가족들을 돕기 위해 8학년(중학교 2학년)때 학업을 접고 권투 선수가 됐다. 2차 대전 중에는 공군 조종사 교관을 맡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카지노에 관심을 갖게 돼 투자해 현재는 라스베이거스에 대형 리조트와 호텔을 갖고 있다.
오프라 윈프리© AFP=News1

이밖에도 오프라 윈프리(29억달러)는 미시시피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19살에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앵커를 거쳐 '토크쇼의 여왕' 자리에까지 올랐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풀럼의 구단주 샤히드 칸(38억달러)은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시간당 1.2달러를 받고 접시를 닦았다.

유명 디자이너 랄프 로렌(77억달러) 역시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넥타이 판매원으로 시작해 꿈을 이뤘다. 패션그룹 케링(과거 PPR)의 회장인 프랑소와 피놀트(150억달러)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해 고교를 중퇴했다.

아시아 대부호 리자청(310억달러)은 1940년대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건너왔지만 15살 때 부친이 별세하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오라클의 회장 래리 앨리슨(410억달러) 역시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에는 삼촌과 숙모가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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