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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三無)의 섬, 가을캠핑

맹모, 제주에 가다 - 이진주의 탐라일기·27
서울 '마마토모'에서 제주 '맹모'가 되기까지

(서울=뉴스1) | 2013-10-13 06:40 송고
편집자주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같은 대학원 언론정보학과에서 공부했다.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지난해 남편과 제주로 내려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왕년의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성과 모성에 관심이 많다. 도 닦듯 엄마 노릇을 마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립할 작정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학교를 짓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동화를 쓰는 것이 꿈이다.[편집자주]

근 일주일을 앓았던 장염이 잦아들자마자 알레르기성 눈병이 찾아왔습니다. 눈에서 모래알이 도록도록 굴러다니는 것 같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데다, 눈꺼풀이 그야말로 환장하게 가렵더라고요. 흙일을 하다 말고 어깻죽지로 눈을 벅벅 긁고, 물일을 하다말고 고무장갑 벗은 손으로 눈물이 나도록 문질러댔어요.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다 못해 얼굴은 뭘 발라도 뒤집어지고, 손톱 거스러미를 떼어낸 자리에는 염증이 다 생기더군요. 병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고 사소한 증상들이 꼬리를 무는 걸 보니, 면역력이 상당히 약해진 듯 한데요. 언니들 얘기로, ˇ한 해 한 해 다르다˘더니, 제 몸도 이렇게 무너져가는 걸까요? 그 와중에 제 장염 때문에 한 주 미뤘던 캠핑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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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삼양초등학교 회천분교 터에 자리잡은 <삼무야영장>의 야경입니다. 제가 찍은 휴대전화 사진으로는 도저히 이런 분위기를 못 살리겠더군요. 예, 정말 이만큼 근사합니다. (사진제공=삼무야영장)
옛 분교에서 캠핑을, 삼무야영장
멤버는 지난 여름에도 한 번 캠핑을 같이 했던 네 가족이었어요. 소구리가 사모해 마지않는 ´총대장 형아네´가 주도하는 모임인데요, 그 형아네는 두 식구는 품고도 남을만한 커다란 텐트 뿐 아니라 테이블이며 코펠이며 버너며 의자며 모든 캠핑 장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보다 어린 다른 세 식구는 돗자리 몇 개, 고기 몇 근만 마련해 가면 되는 최적의 조건이었죠. 그러나 이주째 ´메롱~´인 제 컨디션 때문에, 이번만큼은 사양하고 싶더군요.

하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텐트도 척척, 불도 척척이어서, 소구리가 ´전설의 레전드´로 모시고 있는 OO 형아를 만날 기회인데요. 더구나 제주의 변화무쌍한 날씨로 미뤄보건대, 이번 주를 넘기면 야외 캠핑은 영 물 건너 가겠더라고요. ˇ소굴아, 너 땜에 간다. 끄응~˝ 그러고선 무거운 몸을 일으켰는데, 그 캠프가 제게도 힐링캠프가 됐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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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형아들이 일하는 사이, 꼬마들은 비눗방울을 불고, 잠자리채를 휘두르며 놀았습니다. 요구리는 비눗방울을 불다 말고 한살 터울 형아와 칼싸움을 했지요. 사전에 상의한 것도 아닌데, 형아는 빨간 닌자 <카이>, 요구리는 황금 닌자 <로이드> 옷을 맞춰 입고 나왔네요. (사진=이진주. 뒤에 보실 사진들은 쭈욱 제가 찍은 겁니다요.)

삼무(三無)야영장은 옛 학교 터에 들어선 곳이었습니다. 삼양초등학교 회천분교(1963년 3월 5일 개교~1996년 3월 1일 폐교). 과연 평탄하고 아늑하더군요. 삼무가 왜 삼무냐면요, 제주를 가리키는 ´삼다삼무´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 대문과 거지와 도둑이 없다는 삼무.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제주는 정말 이상향의 섬이로군요. 제주 구도심(구제주)에서 15분 정도 거리여서 접근성도 좋았습니다. 산 속에 있는 캠핑장은 밤낮의 기온 차가 여기보다 커서, 한여름이 아니면 지내기 힘들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빠들이 주말에도 일을 하는 터에 오후 네시가 넘어서야 네 식구가 모였습니다. 시월의 오후 네 시인데도 볕은 한여름처럼 따가웠어요. 봄볕에는 딸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며느리 내보낸다는, 바로 그 가을볕이었죠.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이 아리고, 모자가 없으면 살갗이 익겠더군요. 추위에 대한 방비만 단디 했지, 가을볕 대비는 전혀 하지 못한 저는, 해넘이 직전의 두어 시간 동안 일광욕 잘 했습니다요, 쿨럭. 그런데 그 볕이 보약이더라고요. 마음이 한없이 노곤해지면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니나노~ 가락이 절로 나오더라니까요.

´눈곱소녀´의 비애
사실 요 며칠, 몸이 아프니 불만도 많았어요. 이 집에선 아가도 새도 나무도 번성하는데 저만 비쩍 말라가는 것 같더군요. 거울을 보면 웬 푸석푸석한 허깨비가 서 있었습니다. 얼굴엔 흰 버짐이 피고, 불그죽죽한 것들이 이마며 볼에 잔뜩 돋아난 채로. 유행이 뭔지 모르는, 짝이 맞지 않는 추리닝 차림으로요. 이건 삼십대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었어요. 차라리 유령이나 좀비였지요. 제 꼴이 그렇단 걸 자각하면서는, 닭다리처럼 한 입 뜯어먹고픈 요구리의 통통다리와, 들여온지 한 달만에 새끼를 밴 잉꼬 암컷 ´연두´의 볼록한 배와 하얀 꽃이 피고 지더니 어느새 열매 맺은 레몬나무 같은 것들도 아무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죠. 남자의 향기를 물씬 풍기며 출근하려던 곰서방이, 황금향 껍질을 벗기고 있는 제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아우, 우리 큼큼 마누리, 좀 씻어라~˝ 제 분노는 마른 장작에 불을 댕긴듯 폭발하고 말았어요. 반쯤 까던 황금향을 바구니에 도로 집어던졌죠. ˝지금 내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그래?˝ 퐈이아~!!! 곰서방은 이크 싶었는지, 나간다는 말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냉장고 문에 비친 제 눈에는 곱이, 잔뜩 껴 있었어요. 아뿔싸, 이건 뭐, 송중기를 만나기 전 ´치석소녀´의 모습? 눈.곱.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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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욕동생 김슬기와 늑대소년 송중기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치석소녀>. 메디안 치약 광고라는데, 여느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저는 인터넷 동영상으로만 봤습니다. 아놔, 저런 역할을 소화하다니 슬기찡 쨔응~ 지금 제가 바로 저 한 마리 들짐승이에요. 싱크로율 100%! (사진제공=메디안)

그래요,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며 스킨 로션에 안티에이징 크림까지 챙겨바르는 곰도리, 사과향 딸기향 샤워젤로 땀내와 고린내를 지우는 소구리, 꿀향기 허브향기로 젖내를 감추는 요구리와 달리, 언제부턴가 제 몸에선 향기가 사라졌어요. 향기만 안 나면 다행이게요. 땀내 젖내 고린내... 그 모든 냄새의 근원인 저는, 냄새들을 알처럼 품은 채 시간만 나면 옹크리고 잠드는 들짐승이었죠. 샤넬 바디로션이 있으면 뭐하겠어요. 씻어야 바르죠.

요구리 씻길 때 같이 씻자 싶다가도, 바닥을 벌벌 기어다니며 ˝똥 안넝~ 거품 안넝~˝ 이러고 부비적대는 아이를 건지는 게 먼저였어요. 벌벌거리는 녀석을 건져다가 다시 헹궈내고, 보송보송한 타월로 꼭꼭 물기를 닦아내면서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입도 이쁘고~˝ 팔 배꼽 허벅지를 지나 발가락까지 이쁘다고 속삭여주고, 로션을 발라 기저귀를 채우고, 옷까지 입혀놓고 나면, 제 머리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봉두난발이었죠. 이런 제게 필요한 건, 송중기 같은 어깨로 허물을 가려주는 남자지, 너 냄새 나, 이렇게 콕 찍어 알려주는 남의 편이 아니잖아요, 아오.

리어카 타는 아이들
꼬꼬마들이 뛰어노는 동안, 아빠 넷이 텐트를 치고, 엄마 셋이 상을 차리고(저는 요구리와 꼬마들을 담당하는 한편, 사진으로 기록을... 쿨럭...), 형아 하나가 짐을 날랐지요. 나이 순으로 따졌을 때 부대장 격인 둘째 형아 소구리는 어느새 야구 장비를 들고 다른 텐트 남자아이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들과 캐치볼도 하고, 프리스비도 날리고, 배드민턴도 치더라고요. 번죽도 좋지. 소구리의 동갑내기 여자아이들 둘은 그림처럼 앉아 노래도 부르고,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비눗방울도 날렸어요. 저쪽의 시커먼 사내아이들과 달리, 이쪽은 색깔로 치자면 분홍색, 참으로 화사하데요. 제게도 저런 화사한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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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구리는 총대장 형아의 지휘 아래 토치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불씨가 사그러드는 장작 위로 낙엽과 삭정이들을 주워다 던져 넣기도 했지요. 그보다 더 어린 꼬마들은 경이에 찬 눈으로 불을 바라보며, 불의 제의, 불의 놀이에 정식으로 참여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 시각, 아빠들은 저쪽에서 <보이 스카우트> 시절의 야영 체험담을 나누었지요.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나자 해가 졌습니다. 바람이 사뭇 차가워져 아이들에게 카디건이며 바람막이 점퍼를 한 겹씩 더 입혔어요. 총대장 형아가 숯과 장작을 가져왔지요. 캠프파이어의 밤! 드디어 모든 아이들이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겁니다. 형아가 토치로 불을 붙이는 모습을, 아이들은 경이에 찬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능숙한 솜씨였어요. 시범을 보인 형아가 부대장 소구리에게 토치를 넘겨줬습니다. 나부대마왕 소구리가 어쩐 일인지 잔뜩 긴장해서는 침착하게 불을 다루더군요. 더 어린 남동생 넷이 침을 흘리며 소구리 형아를 바라봤습니다.
형아는 소구리에게서 다시 토치를 받아 모깃불도 붙이고, 램프불도 붙이고, 화롯불도 붙였습니다. 은박지에 싼 고구마도 조심조심 던져 넣었죠. 아빠들도 불은 형아의 일로 인정하고, 모든 걸 형아에게 일임했어요. 다칠까봐 조바심 내는 어른도 없었고,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투는 아이들도 없었습니다. 불이라는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 모든 것이 정해진 서열과 순서가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더군요. 이것이 리더십의 전수겠지요. 선사시대의 소년처럼, 아이는 불을 다루며 어른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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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장 형아가 짐을 나르던 리어카(사진 위)는 밤이 되자 부대장 소구리가 이끄는 인력거(사진 아래)로 변신했습니다. 아이들은 다투어 인력거를 끌며 몹시 신나했어요. 바로 이런 게 시골 아이들이죠. 저도 어렸을 때 시골에서 ´니아까´ 좀 타 본 뇨자. ´노깡(일본어로는 도칸. 수로 등의 용도로 흙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둥글고 큰 관)´ 속에서 숨바꼭질 좀 해봤던 뇨자.

저쪽에선 아빠들이 역할을 나눠 저마다의 일을 했습니다. 고기를 굽고, 술상을 봤지요. 맥주 캔을 기울이면서 어릴 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어요. 보이 스카우트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야영장에서 보냈던 추억도 하나 둘 꺼내더군요. 가장 웃겼던 건, 손가락 세 개를 펴고 스카우트 선서를 해야 하는데, 손가락이 굽어 눈물로 포기해야만 했던 일화였어요. 아빠들은 양 편으로 갈려 ˝이게 왜 안 되지?˝ ˝그게 어떻게 되나?˝ 입씨름을 했지요. 남자들이란.

엄마들은 모처럼 와인잔을 들고 한숨 돌렸습니다. 학원 라이드 하는 얘기, 중학교 입시 얘기부터 유치원, 어린이집 아가들 얘기까지 나왔죠. 저 역시 한두 해를 터울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일년만 지나면 한결 수월해지리란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됐습니다. 고작 한두 해 차이인데, 아이들은 세 살 다르고 네 살 다르더군요. 엄마들 몸이 어제 오늘 다른 것처럼요. 요구리도 내년 여름 다시 캠핑을 올 때쯤엔 엄마 손을 좀 덜 탈 테고, 저도 제주살이에 적응을 좀 해서 눈병이나 장염 따위 모르는 한결 건강한(?) 어른으로 거듭나지 않을까요? 제 자신을 잡아먹는 회한 같은 거 다 버리고 오롯이 현재를 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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