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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100여페이지 분석자료 폐기…수사방해

분석결과 나오기도 전 보도자료 작성

(서울=뉴스1) 이윤상 기자 | 2013-06-14 04:42 송고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 News1 양동욱 기자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의 '도화선'이 된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29)에 대한 경찰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의 대선 개입 정황을 포착하고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55)의 지속적인 수사 방해 때문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해 12월 13일 "2012년 가을께부터 12월까지 심리정보국장의 지시에 따라 안보팀 직원 수십명이 강남 일대 오피스텔과 PC방, 커피숍 등에서 대형 포털사이트와 언론사, 정치단체 홈페이지에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지·반대하는 의견을 유포했다"는 내용의 사건 개요 자료를 첨부해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증거 분석을 의뢰했다.

수서경찰서는 당시 여직원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삭제된 파일과 인터넷 히스토리 복구, 인터넷 계정, 닉네임 자료, 이메일 송수신 관련 파일, 암호화된 문건, 이동식 저장장치 사용 기록 등 혐의사실을 입증할 참고자료 일체를 요청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증거분석팀은 바로 12월 14일 오후 7시 20분부터 '인케이스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을 시작했고 40분뒤 김씨의 노트북에서 삭제된 문서 파일 1개를 복구했다.

이 문서에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 게시문 운영·관리 방식과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 게시물 선정·저지 방법, 30여개의 ID, 닉네임, 패스워드 등이 담겨있었다.

또 '뽐뿌', '보배드림', 'SLR클럽' 등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이름과 댓글작업 외부 가담자인 이모씨의 인적사항, 이씨 명의로 개설된 ID와 닉네임 등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는 '오빤 MB 스타일' 동영상에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도 발견됐다.

서울경찰청은 분석을 통해 메모장에 있는 30여개 ID·닉네임은 국정원 직원이 여론 사이트에서 게시글 작성과 찬·반 클릭에 사용한 것을 확인했다.

이들 ID를 기초로 10개의 추가 ID를 발견했고 '오늘의 유머' 1만7116건, '보배드림' 1348건, '뽐뿌' 1076건 등 사이트 접속 현황도 파악됐다.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게시한 "저는 이번에 바근혜를 찍습니다"라는 글과 무상복지 반대글인 "최고의 복지" 등 다수의 정치적 이슈에 관한 게시글이 htm, html 파일조각 형태로 노트북에 남아있었다.

2012년 11월 19일 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조건 없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겠다"라고 밝힌 직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목 내놓고 금강산 가기 싫다'는 제목의 반대글이 올라온 사실도 확인했다.

또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과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글, 이명박 대통령 칭찬 글, 4대강 등 정부시책에 대한 지지글, 통합진보당 비난 글 등 정치적 게시글도 발견됐다.

지난해 12월 4일 대선 TV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비판하자 토론회 직후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ID를 바꿔가며 여러 건 게시한 것도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녹화 영상을 확인한 결과 댓글 분석 작업 중 분석관들이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 "대박 노다지를 발견했다", "오늘의 유머에서 게시글이 나왔어요", "국정원 큰일 나는 거죠", "우리가 여기까지 찾을 줄 어떻게 알겠어" 등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조사됐다.

분석관들은 확인된 정치·선거 관련 출력물을 100여페이지 분량으로 정리해 서울경찰청 지휘부에 보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청장은 분석 의뢰서 내용과 관련된 증거가 발견되면 실시간으로 수사팀에 알려줘야 하지만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분석 상황과 결과를 알리지 말라는 지침을 분석팀에 내렸다.

또 수서경찰서의 분석 의뢰가 12월 13일 접수되자 다음날 공문을 보내 분석 관련 키워드를 '문재인', '박근혜',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등 4개로 줄이도록 지시했다.

서울경찰청은 12월 15일 오후 분석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증거물 분석결과 금년 10월 이후 문재인·박근혜 대선 후보에 대한 비방·지지글에 해당하는 게시글이나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미리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발견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발견되지 않았다"로 수정한 뒤 다음날 오후 11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발표하도록 했다.

경찰은 하루지난 12월 17일에도 "혐의사실을 확인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수사결과 발표 이후 서울경찰청은 분석물 전달을 계속 거부하다가 12월 18일 오후가 돼서야 관련 증거물을 수서경찰서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ID와 닉네임 등이 누락됐고 서울경찰청 분석팀이 출력한 100여페이지 상당의 분석자료는 모두 폐기됐다.

검찰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축소·은폐 등 수사 방해가 김 전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ys2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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