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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불합리한 국가위임사무로 지방자치 죽어간다

시대역행적인 국가위임사무 증가로 지방재정 휘청
지방살리기 위한 관행·제도 개선 절실

(서울=뉴스1) 특별취재팀 | 2013-02-27 20:01 송고 | 2013-02-28 09:36 최종수정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에서 열린 전국 광역시도지사와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염홍철 대전광역시장, 허남식 부산광역시장, 김관용 경상북도지사, 박근혜 당선인,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김완주 전라북도지사,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 홍준표 경상남도지사, 박준영 전라남도지사.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지 20년이 넘었는데 지역은 과도하고 불합리한 국가위임사무로 죽을 지경입니다."

지난해 8월 전국시도지사협의회와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정부가 제시한 영유아보육 재원대책을 '수용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정부가 요구한 대표적인 국가시책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충격적인 자리에서 지자체장들은 입을 모아 지역재정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가위임사무란 말 그대로 국가가 지방에 위임하는 사무이다.

문제는 정부가 국가사무를 위임하면서 인력과 시간, 비용 등도 지자체에 부담시켜 지방자치제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이다.

◇구분과 비용이 '애매모호'한 국가위임사무

뉴스1 취재팀이 전국의 지자체 담당자에게 국가위임사무에 대해 묻자 대부분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원도의 담당자는 "지방분권 촉진을 위해 추진된 국가권한 지방이양 업무와 국가 위임업무 간 명확한 구분이 아직 안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지방이양사무와 국가위임사무 등의 업무는 지방자치과와 법무통계담당관실에서 나누어 맡고 있지만, 실국별로 명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정부가 국가사무를 위임하며 당연히 지원해야 할 비용이 명확하게 처리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앙정부로부터 국비와 시비 등 예산 총액이 잡히지 않은 위임 사무들이 대량으로 넘어와 업무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의 국가위임사무 394건 중 국비와 시비 등 예산이 잡힌 국가위임사무는 단 18개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지자체는 국가위임사무의 건수와 예산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국가위임사무가 조례에 제정돼 있지만 범위와 건수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는 "국비와 시비의 배분이 상식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보육과 양육, 출산장려, 노인복지 등 주로 복지에 관한 사무가 핵심인 국가위임사무의 비용은 사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국비7-광역자치단체비3, 혹은 국비6-광역자치단체비4, 국비5-광역자치단체비5의 비율로 추진한다. 광역자치단체비 부담 부분의 경우는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6대 4로 부담하기도 한다.

박영광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일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서 예산 전액을 지원하지 않고 5대5 또는 7대3 형식으로 매칭을 시키고 있다"며 "재정을 지원받지 못하고 일만 많아지니 지방재정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평원 경기도 예산총괄팀장은 "국가위임사무로 인한 지자체의 재정압박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각 항목의 국고보조 비율을 지방실정에 맞게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위임사무, 지방발전 역행 주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수용거부'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영유아보육제도는 지자체 재정의 어려움을 공론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급기야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28일 "국가위임사무는 계속 늘어나는데 정부가 그 돈을 다 대는 게 아니고 매칭해서 지자체가 내다보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박 시장은 "지방자치가 그동안 많이 발전해왔지만 재정과 조직 문제 때문에 아직 반쪽자리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국비에 대한 매칭비율이 다른 광역시보타 높아서 부담이 더욱 큰 상황이다.

영유아 무상보육 사업의 경우 국회가 일방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바람에 서울시는 2165억원(시비1569억원·구비 596억원)의 부담이 가중됐다. 이때문에 서울시는 올 2월 추가 소요 예산 전액을 국가재정으로 전액 부담해 줄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경기도의 국가위임사무 재정부담액은 총 5조5000억원인데 도는 도비 1조5000억원을 담당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부담을 주는 사업은 무상보육비로 도는 올해 3974억원, 31개 시·군은 3607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노인노령연금 등 복지 확대에 따라 도비 분담액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시의 양육수당 예산은 시비가 2012년 40억원에서 올해 178억원으로, 구·군비는 19억원에서 76억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이렇게 대책없이 사무와 비용이 늘어나면 지자체는 결국 자신들의 사업을 접어야 한다.

부산시 예산담당자는 "국가위임사무가 늘면서 부산시 메칭 사업비도 증가해 자체 사업은 거의 못하는 실정"이라며 "지자체 자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국고보조금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수산물안정성 검사의 경우는 업무만 이양하고 인력지원이 없어 시행을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위임사무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억눌러 지방자치를 역행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김찬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집권적인 지방행정체가 지속되고 있는 상태에서 사무이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분권은 지방정부의 재정부담을 가중시켜 지방자치를 역행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위임사무를 자치사무화한 이양사무도 지방정부의 부담을 주고 있다.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의 '중앙권한의 지방이양에 따른 지방재정 현황분석 및 재정 지원방법 연구'에 대한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1년 3월 이양된 1678개 사무의 행·재정적 비용은 1조3700억원으로 추정됐다.

여기에 이양예정인 1262개 사무의 이양비용도 1조70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양사무의 경우 위임사무에 비해 사무권한은 지방으로 넘어오지만 여전히 재정은 지방이 부담해야 한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에서 열린 박근혜 당선인과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News1 인수위사진기자단


◇"해결책은 지방재정 개선과 국가위임사무 폐지"

국가위임사무로 인한 어려움은 결국 지방재정의 문제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가 지방을 지원하는 세수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지방세 방식이나 지방교부세 또는 국고보조금 형식으로 예산을 늘리는 근본적인 세제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의 사무를 지방에 넘겨주면서 돈 배분 권한을 줘야 하는데 (현행)국가위임사무는 그렇지 못하다"며 "사업에 대한 조직, 예산, 업무 등 결정권을 전부 지방정부에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황한식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지자체의 수입은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국세 80%-지방세 20%인 '이할자치' 구조"라며 "국세 중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해서 지방세 비율을 올려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또 지방정부의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국가위임사무를 대폭 축소하거나 폐지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국가위임사무가 남아있는 한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실현은 어렵다"는 것이다.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는 "사무만 지방으로 이양되고 그에 필요한 재원이나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어 지방정부의 불만이 상당한 게 현실"이라며 "국가위임사무를 폐지하거나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황한식 교수는 "국가위임사무를 100% 없애고, 사무를 ▲국가사무와 ▲자치사무로 명백히 구분해야한다"며 "사무를 지방에 이양해야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임성도 높아진다"고 밝혔다.

박영강 교수는 "(현재 상황은 국가위임사무가) 중앙정부의 일이기 때문에 지방의회는 관여도 하지 못한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하위기관으로서 상하관계 하에 일을 하기 때문에 지방자치 정신에도 어긋난다"며 "국가위임사무를 없애고 명확하게 법으로 내용을 규정한 법적수탁사무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찬동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와 광역단체, 기초지자체간 역할분담을 명확히 하고, 그 역할분담에 부합하는 재정분권도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위임사무제도가 남아 있는 한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박정양·김영신(서울)·주영민(인천)·유진희(대전)·김영재(충북)·윤상연(경기)·강승권(강원)·박중재(광주)·이재춘(대구)·송기평(제주)·김대벽(경북)·김재식(울산)·강진권(경남)기자]


pjy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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