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드냐구요? 많이 힘든 정도가 아니에요. 올해 안으로 가게 접을 생각입니다."
서울의 H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한 문방구 사장 박모씨(55)의 말이다.
몇 년 전만 해도 5개의 문방구가 함께 영업했던 이 초등학교 골목에는 현재 단 하나의 문방구만 남아있다. 이마저도 올해가 지나면 볼 수 없게 된다.
박씨는 문구소매점들이 연이어 문을 닫는 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학교 준비물실의 운영을 꼽았다.
초등학교 준비물실은 지난 2000년 교육청이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을 시행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해 3월부터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놓은 3무(無) 학교(학교폭력, 사교육비부담, 준비물 걱정없는 학교) 정책에 따라 학생 1인당 교육청이 2만원, 시가 1만원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는 "쉽게 말해 학교 안에 돈 안내고 사용하는 문방구가 하나 있다고 보면 된다"며 "아이들과 부모에게 준비물에 대한 걱정을 없애겠다는 교육 정책의 취지는 좋지만 우리 같은 영세 문방구업자들에게는 힘든 제도"라고 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건 값을 낮춰서 경쟁력을 갖추는 방안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워낙 작은 규모로 장사를 하다 보니 단가가 높기 때문에 마진이 남지 않아 불가능하다"며 "할인을 해도 인터넷 판매가는 아예 따라갈 수조차 없다"고 답했다.
학교 준비물실에 들어갈 물품을 공급하는 하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박씨는 "문방구가 대형 공급업자와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점이라는 것이 리베이트 뿐"이라며 "과거 학교가 문방구와 거래하던 시절에는 교장이나 행정실장이 바뀌면 공급하던 업자가 모두 바뀔 정도로 유착관계가 형성됐었지만 이제는 공개입찰로 바뀌어 그냥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초등학교 앞도 상황은 비슷했다.
J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문구점 유길선(55) 사장은 "아이들이 아침에 등교할 때 문구점 앞을 그냥 지나만 간다"며 "학교에서 준비물을 준비하는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문구류는 있는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내놨을 뿐 팔리는 것이 거의 없다"며 "고작 과자들이나 물감, 크레파스 정도나 조금 팔린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주5일제 전면 시행도 문구소매점에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유씨는 "그나마 주말에 일찍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들러 간식거리를 사가곤 했는데 매주 놀토이다 보니 장사가 더 안 된다. 올해 3월 매출은 지난해의 딱 절반 수준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형 문구점과 도매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중구에 위치한 한 중형 문구점의 사장 이모씨(50)는 "학교에서 준비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이후로 매출이 완전히 없다고 보면 된다. 3무 학교 시행은 문구점들 다 죽으라는 얘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월세에 직원 월급까지 줘야하는데 최근 수년 간 3월 신학기 매출이 해마다 20%씩 감소하고 있다"며 "정부에서 제대로 된 경기부양책도 내놓지 못하면서 그나마 있는 문구점마저도 다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등포에서 문구도매점을 운영하는 이경오 한국문구유통업협동조합 서울지역 회장은 "학교에서 준비물을 제공하기 시작한 이후로 소매점이 눈에 띄게 문을 닫고 있어 도매점도 큰 영향력이 받고 있다"며 운을 뗐다.
이 회장은 이같은 문구점의 위기가 온 이유에 대해 "많은 학교들이 수의계약을 위해 이용하는 'S2B교육기관전자조달시스템'의 운영방식이 문구업계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교직원공제회가 문구업과 무관한 비전문가들을 S2B시스템 관리자로 세워놓고는 사실상 최저가 입찰을 유도하는 행정안전부 예규에 따라 거래를 중개한다"며 "그나마도 낙찰을 받지 못하면 마땅히 팔 곳도 없다보니 손해가 나더라도 최저가로 입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해를 보면서라도 낙찰된 업체는 그나마 낫다. 그마저도 받지 못한 업체들은 운영자금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조합에 가입된 서울지역 도매업체들의 수는 2005년 67개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1년에는 53개를 기록했다.
이 회장은 "중소기업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문구점들이 죽어나가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도매업체 하나가 문을 닫으면 이에 딸린 가족들이 서너 가정만 돼도 20여명이 함께 굶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간 대형마트의 문구류 판매,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 경기 침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던 문구 도·소매점들은 이제 시와 교육당국이 내놓은 '준비물 없는 학교' 정책까지 4중고를 겪으며 매일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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