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를 비롯한 내각 및 청와대 비서진에 이어 핵심 공공기관과 민간영역인 금융권까지 관료출신 인사가 대거 투입되면서 국가 운영 시스템이 과거 관치시대로 회귀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에서 시작된 관치 잡음은 최근 들어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토교통부 등 경제부처 전방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4대 천황’으로 상징되는 금융지주회장을 신호탄으로 금융 공기업, 경제부처 공공기관장이 사퇴대열에 가세할 때만 해도 권력 성층권의 외압 냄새는 풍겼지만 관치 논란을 불러올 정도는 아니었다. 퇴진 인사 대부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로 자리를 꿰찼던 MB맨인 만큼 원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정부 조각때 고시 출신 공직자들이 대폭 기용된데 이어 금융권과 공기업 기관장 후임자리마저 대놓고 민간 전문가가 아닌 관료 출신들이 전진배치되면서 핵심 키워드인 '개혁성'을 망각한 관료 공화국이 재현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와 갑을문화 청산 바람을 틈타 전문성이 떨어지는 퇴직관료들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영역까지 속속 입성할 경우 관료마피아의 공생 및 유착관계는 물론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모피아 전성시대 도래
5일 KB금융지주 회장에 내정된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 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낙점 받은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은 각각 행시 20회, 24회로 옛 재무부,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을 담당했다.
최근 취임한 김근수 여신금융협회 회장도 재경부, 기획재정부를 거친 관료출신이다. 김익주 신임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기재부 국제금융국장, 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장 등을 지냈고, 이원태 신임 수협은행장은 기재부 세제실 출신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과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를 제외하면 최근 물갈이 된 금융 기관 수장 자리를 전직 관료들이 싹쓸이한 셈이다. 한국거래소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감투도 모피아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주목받은 인선은 KB금융지주와 농협금융지주다. KB금융지주는 정부 주식이 단 1주도 없는 순수 민간 금융사다. 농협금융지주는 경제지주와 함께 농협 개혁의 양대 축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금융지주의 사령탑을 재무관료 출신이 차지한 것은 조적의 자율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두 금융지주 모두 겉으로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거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금융당국 수장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최근 이례적이고 노골적으로 “관료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그룹 회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거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 정부 출범 당시 경제팀 라인업에 경제기획원 출신인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조원동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임명되자 ‘모피아 시대는 막이 내렸다’는 섣부른 추측이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 우리금융 매각,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편 등 굵직한 현안 사업의 속도를 내기 위해 민간 전문가 보다는 금융 관료 출신들을 중용하면서 모피아 출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경제 전반에 대한 밑그림은 경제기획원 출신이,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재무부 출신이 맡는 구도로 짜여졌다.
물론 경제기획원이나 재무부 출신 관료들은 기획력과 경제 정책을 짜는데 능숙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선후배 사이로 촘촘히 얽혀있는 공직사회의 구조적 폐쇄성과 경직성 탓에 개혁성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단점도 크다.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속에 관치금융 논란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 조직 내에서 안정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국토부등 경제부처도 관료출신 속속 투하
관료 낙하산은 세포분열을 통해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다. 과거 재무부 출신 인사를 뜻하는 모피아는 물론 노른자위 산하기관을 많이 갖고 있는 산(産)피아(산업통상자원부), 국(國)피아(국토교통부)등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후 첫 공공기관장 교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지면서 관심을 모았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자리는 정창수 전 국토부 차관에게 돌아갔다. 그는 행시 23회 출신으로 대통령 비서실 건설교통비서관, 건설교통부 주택도시국장, 기획조정실장, 국토해양부 제1차관 등을 역임했다.
전임 이채욱 사장은 삼성GE의료기기 대표이사, GE메디컬 부문 아태지역 총괄사장, GE코리아 회장을 거친 전문 경영인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임 사장에는 이재영 경기도시공사 사장이 낙점됐다.
이 내정자 역시 행시 23회로 공직에 입문해 건설교통부 토지국장, 국토균형발전본부장 등을 지냈다. 직전 사령탑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이지송 사장이었다.
정치인 출신의 변정일 이사장이 퇴진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엔 김한욱 전 제주도 행정부지사가 수장으로 발탁됐다.
산업부의 경우 산하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에 변종립 전 산업부 지역경제국장을 앉혔다. 행시 27회인 변 이사장은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국장과 산업부 지역경제국장을 역임한 통상관료다.
한국가스공사 역시 2명으로 압축된 신임 사장 후보에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이름을 올린 상태다.
관료 낙하산 부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공공기관 안팎에서도 굴절각이 다르다. 서로간 이해관계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산업부 산하 한 공기업 고위관계자는 “내부 승진 케이스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언감생심”이라며 “외부인사가 투입될 경우 전문성은 있을지 몰라도 부처와의 업무 조율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10대 그룹 임원은 "현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민간부문에 대한 규제와 처벌을 강화하면서 관료출신 전진배치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면서 ”관료 중심의 국정시스템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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