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성추행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사건 발생 당시 미국 현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수행원들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대통령의 방미기간 중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할 대변인이 한인 동포 출신의 주미대사관 인턴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당시 방미 수행원들이 보인 상황 장악력과 역할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목들 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직후 위기관리를 위한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마다 모른 척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대책회의 조차 없었다는 것이 방미 수행원들의 입장이고 이것은 윤 전 대변인이 일으킨 문제를 조기에 인지한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이 마치 방미 수행 '최고 책임자'인듯이 나홀로 결정을 내린 것처럼 돼가고 있는 양상의 빌미가 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수석에게만 책임이 떠넘겨지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이 수석을 포함한 방미 고위 수행원들이 이 문제를 놓고 대책을 협의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초기에 사건을 정공법으로 수습하기 보다 축소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렸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처음 제기된 시점은 8일 오전 7시에서 8시(이하 미국 현지시간)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해 인턴 여성으로부터 사건을 인지한 한국문화원 측은 이 사실을 방미 수행단 일원인 청와대 홍보수석실 소속의 전광삼 선임행정관에게 연락했고, 전 행정관은 즉각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전 행정관은 이 과정에서 문화원 관계자와 피해 인턴 여성을 만나기 위해 숙소로 방문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방문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한 행동으로 비치기도 했다.
전 행정관이 상관인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이 사건을 보고한 시점은 오전 9시쯤이다.
이 수석은 곧바로 윤 전 대변인을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 앞으로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했으나 윤 전 대변인은 성추행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 때는 이미 현지 경찰에 신고가 돼서 조사가 시작된 상황이기때문에 윤 전 대변인의 부인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윤 전 대변인은 나중에 귀국한 이후 당시 이 수석으로부터 "귀국을 지시받았다"며 역공을 펴 청와대 측의 '귀국 종용'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수석과 윤 전 대변인의 영빈관 앞 대화는 5분 남짓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이 예정돼 있어 이 수석은 "전 행정관과 상의하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수석은 "1시간 뒤 행사 끝나고 돌아올테니 내 방에 가서 기다리라"며 호텔 열쇠를 윤 전 대변인에게 건넨 것으로 돼 있다. 이 대목에서 드는 의문은 우선 이 수석이 현지 경찰의 조사를 피하기 위한 은신처 제공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윤 전 대변인의 행사 수행을 막고 격리 조치를 취했을 정도로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음에도 즉시 다른 수석들이나 방미 수행단의 윗선에 보고하고 대책을 협의했는지 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이 수석은 자신의 호텔 열쇠를 윤 전 대변인에게 준 데 대해 현지 경찰의 조사를 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이 단계에서 방미 수행단은 이번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는 1차 기회를 놓친 셈이 됐다.
이 수석은 귀국 후 기자들과 만나 이 때의 상황에 대해 "그 때 굉장히 쇼크를 먹은 상태여서 당시 상황이 100%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이 문제가 대통령의 방미에 결정적 오점이 될 수도 있음을 직감했음에도 방미 수행단 내에서 대책협의를 가졌는지 여부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아가 이 수석이 전 행정관으로부터 윤 전 대변인의 행태에 대해 인지한 최고위층이라고 몰아가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문화원 측이 전 행정관에게 알렸다면 당연히 문화원을 관리하는 주미 대사관에도 상황을 동시에, 아니 오히려 보다 먼저 전파했을 것이고 주미 대사관 관계자를 포함한 방미 수행단의 외교라인도 실시간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이 수석은 이 수석대로, 외교 라인은 외교 라인대로 서로 상황을 공유하지도 않고 그냥 입다문채 시간만 가기를 바랬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대책 협의가 이뤄져서 윤 전 대변인이 한국행 비행기를 탄 것을 확인하고 상황이 무마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도 8일 오후 박 대통령과 방미 수행단이 전용기로 로스엔젤레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대부분의 수석들이 윤 전 대변인의 귀국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의 국민들을 우롱하는 수준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 수석은 사의를 밝히고 그것을 수용하는 차원이 아니라 즉각 해임됐어야 옳다.
어찌됐든 쉬쉬하는 상황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5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제대로 된 대책회의 한번 해보지 않고 시간을 흘려 보냈다는 것이 방미 수행단의 주장이다. 또 한번의 기회가 날아간 셈이다.
그러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박 대통령에게 보고된 것은 상황 발생 하루가 지난 9일 오전이라는 것 또한 방미 수행단의 주장이다.
귀국길에도 이번 사건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 등을 고려해 수습방안을 강구할 수 있었으나 이 기회 또한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사건 초기 단계부터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필요한 정무적 판단을 왜 못했는지도 중요하게 지적돼야 할 대목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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