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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하토야마, 일본의 '빌리 브란트'인가?

(서울=뉴스1) 배상은 기자 | 2013-01-18 10:40 송고 | 2013-06-12 11:04 최종수정

"일본군이 저지른 죄를 사죄하고 싶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제 93대 일본 총리. 그는 18일 중국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시에 위치한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찾아 이같이 말한 뒤 조용히 두 손을 모은채 고개를 숙였다.

일본의 전직 총리가 난징기념관을 찾은 것은 이번이 3번째이다. 하지만 하토야마 전 총리의 이번 방문은 남달랐다.

16일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묵념하는 하토야마 전 총리 ©AFP=News1

그는 이 자리에서 "일본인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일본군이 저지른 죄에 대해 사죄하고 싶다"며 난징대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어 "난징대학살과 같은 참혹한 사건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토야마 전 총리의 이날 행동에 대해 중국인들은 웨이보 등 SNS를 통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 중 한 중국인은 그를 나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과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와 비교하면서 "하토야마도 무릎을 꿇어야 한다"며 "아직 그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브란트 총리는 지난 1970년 현직 서독 총리로써 처음으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2차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위령탑 앞에 서서 두 무릎을 꿇고 나치의 학살행위를 사죄했다.

비에 젖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도 마다한 브란트 총리의 진심 어린 사과는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전범국가 독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선입견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브란트 총리의 사죄 장면은 지난해 여름 가수 김장훈과 서경덕 교수가 뉴욕타임스(NYT)에 게재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퀘어 광장에도 이 사진을 담은 대형광고판이 걸렸다.
지난해 6월 NYT에 게재된 일본 위안부 비판 광고 © News1


브란트의 사죄에 대해 이후 국제 사회는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다소 상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와 달리 하토야마 전 총리는 하루 아침에 일본에서 나라의 이권을 팔아먹은 역적으로 전락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장관은 17일 하토야마 전 총리를 '국적(國賊)'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중국 언론을 통해 하토야마 전 총리가 "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는 30만명"이며 "이것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수치"라고 발언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일본 여론은 "하토야마가 전직 총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그간 난징학살 피해자가 30만명에 이른다는 중국측의 주장에 "지나친 과장"이라며 부정해왔다.

이같은 일본의 반응에는 사실 '역사'보다는 중국과 영유권을 놓고 첨예하게 갈등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문제가 깔려있다.

학술단체의 초청을 받아 개인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하토야마 전 총리는 난징 대학살 기념관 방문에 앞서 베이징에서 자칭린 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 양제츠 외교부장 등과 중국 고위급 인사와 회담을 갖고 센카쿠의 영토 분쟁을 인정했다.

그는 "센카쿠 지역에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있다는 것을 중·일 양측이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중국측에 전달했다"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일본 아베 정부의 입장과 전면 대치되는 것으로 일본은 그간 센카쿠에 대해 "국제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일본의 고유 영토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영유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토야마 전 총리를 '역적'이라고 비난한 오노데라 방위상도 "하토야마의 발언으로 '일본 영토'인 센카쿠에 분쟁이 있는 것처럼 국제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며 "그가 일본에 큰 손실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한자로 비둘기 구(鳩·일본음 하토)자를 쓰는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양국간 평화의 사절이 되고 싶다는 하토야마에 대한 일본의 격앙된 반응은 경제적 이익이라는 이 시대 절대적 가치앞에 일본이 잃어버린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baeba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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