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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덕성여대 교수 28명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문

(서울=뉴스1) 최동순 기자 | 2014-06-03 08:36 송고

'가만있지 않겠다'는 대열에의 동참을 선언하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들의 결의문

속절없이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확인된 사망자 288명에 여전히 차가운 물속에 남겨진 희생자가 16명인 채, 통한의 세월호 참사 일지에 고통의 하루하루가 보태지고 있습니다. “아가, 엄마가 함께 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고, 외롭게 했던 것 같아서 미안하고, 빨리 꺼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이 나라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라는 어느 희생자 어머님의 글귀가 우리의 가슴을 후비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실종자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어서 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께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상 초유의 참사 속에 우리 사회의 ‘컨트롤 타워’를 실은 배는 표류하고, 국가의 공공성은 실종되었으며, 국정의 최고 책임자는 ‘적폐(積弊)’라는 이름의 눅눅한 포장 뒤에 숨어, 책임 전가와 정략적 계산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결박이 풀린 화물들은 씻을 수 없는 망언과 지울 수 없는 추태가 되어 우리 사회의 곳곳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사고 발생 초기에, 세월호, 해운사,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국가정보원, 검찰청, 청와대 등이 조금만 기민하고 슬기롭게 대처했더라면 이처럼 참담하게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정부 고위관료들이나 언론 종사자, 정치인, 경찰 관계자들이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하고 희생자 유족들에 대해 파렴치한 홀대 및 억압을 자행하여, 전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많은 국민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리가 쌓이고 쌓여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인재(人災)로 간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참사는 ‘개발과 성장’, ‘효율과 경쟁’을 절대적 가치로 떠받들어 온 우리 사회가 과연 문명화된 선진 사회인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 무엇보다도 국민의 신뢰가 ‘바닥권’으로 추락하고 있음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최근 정부에서 수습대책으로 제시한 개각이나 정부기구의 조직 개편 등과 같은 조치들은 현 정권이 당면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졸속으로 마련한 미봉책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사고원인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와 철저한 진실 규명,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안전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회전문·낙하산 인사로 회자되는 현 정부의 인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 보도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간섭은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일부 언론들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포기한 채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언론이 참사의 진실과 희생자 유족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보도하기보다는 정부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그러진 언론의 모습은 참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또 다른 언론인들의 자긍심을 무참히 짓밟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언론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통제를 포기해야 할 것이며, 언론기관 스스로도 사회 공기(公器)로서 진실을 정확히 알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대오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수들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희생과 눈물로 다져온 민주주의적 기본 원칙들이 훼손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하는 국가의 기본적 존재 의미가 방기된 작금의 상황을 목도하면서, 교수로서의 ‘증언과 고백’의 책무를 소홀히 한 채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한 것을 뼈저리게 반성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수들은 국가 권력의 비도덕성을 정당화해주는 전문가로 결코 남지 않겠습니다. 이에 우리는 비극적 참사가 재발되지 않고 희생자 가족의 사회적 치유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음의 내용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첫째,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유가족 참여를 보장하라. 이를 위해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진상을 한 점 의혹 없이 공개해야 한다.

둘째,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이번 참사 과정에서 대처에 무능했던 고위 관료들을 강력히 처벌하라. 그리고 생존자, 희생자,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모욕·비하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하라.

셋째, 정부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세월호 참사의 사후 대책을 마련하라. 특히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무분별한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을 전면 중단하라.

넷째, 정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언론기관 통제에 대한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공영방송인 KBS를 비롯하여 모든 언론기관의 자율성을 보장하라.


2014.6.3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일동

곽정연, 김경묵, 김경희, 김두한, 김미리혜, 김은희, 김종길, 박건영, 손재현, 신지영,
양만기, 우정민, 유견아, 윤지관, 윤희철, 이경옥, 이명찬, 이병호, 이소연, 이응철,
이정욱, 이호림, 정무정, 정요근, 정진웅, 정혜옥, 최진형, 한상권 이상 28명


dosoo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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