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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챙기다 끝내 시신으로… 여교사 어머니 "괜찮다, 잘했다"

"직업의식 갖고 희생된 사람들, 짧아도 잘 산 것"
아버지 전제구 산자부 남북경협팀장, 팽목항서 한달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2014-05-20 06:08 송고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2반 담임교사 전수영씨.(전씨의 페이스북) © News1


"엄마, 나 잘했어? 괜찮았어?"
'배가 기울고 있어. 학생들한테 빨리 구명조끼 입혀야 돼'라는 마지막 말과 함께 깊은 바다 속에 갇혔던 단원고 2학년 2반 담임 선생님 고(故) 전수영(25·여) 교사의 빈소가 20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전 교사는 '고인의 의로운 마음과 행동에 경의를 표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현수막 아래 놓인 영정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빈소 주변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하다 끝내 자신은 빠져 나오지 못한 고인의 뜻을 기리 듯 정홍원 국무총리와 강병규 안전행정부장관, 이주영 해양수산부장관 등이 보낸 조화로 가득 찼다.
고인의 아버지 전제구(53) 산업통상자원부 남북경협팀장과 어머니 최모씨는 검은 색 옷으로 갈아 입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밀려드는 조문객을 맞았다.

딸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지난 한 달간의 대부분 시간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보낸 탓에 아버지 전씨와 어머니 최씨의 얼굴은 햇빛에 검게 타 있었다.

고인의 어머니는 "딸이 발견되길 간절하게 바랐는데, 막상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에 어쩔 수 없이 슬픈 감정이 들더라"고 입을 열었다. 숨진 딸의 이야기에 담담해만 보이던 어머니의 두 뺨에 눈물이 흘렀다.

지난 밤 사이 잠 한 숨 못 이뤘다는 어머니는 "내 딸이 사고를 안 당했더라면 다른 누군가는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며 "정말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고 전했다.

제자들이 먼저 발견되길 기다렸다는 듯 사고 후 34일이 지난 19일 오후 6시쯤 세월호 3층 주방에서 수습된 고인은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채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고인이 머물렀던 객실 R-3은 탈출이 비교적 용이한 세월호 5층에 있었으나 고인은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4층으로 내려갔다 끝내 나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기울어진 여객선 안에서 제자들을 배 위로 올려보내느라 안간힘을 쓰다 다리까지 부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생존자를 통해 사고 당시 작은 체구의 딸이 학생들을 배 위로 올려 보내고 자신은 탈진해 여객선 안에 누워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어머니는 "힘도 하나도 없을텐데, 탈진해 누워 있던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저민다"고 울먹였다.

전 교사의 외삼촌 역시 "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은 구명조끼를 입지도 못하고 다리마저 부러진 같다"며 "학생을 도우려고 객실과 식당칸을 오가다 결국 고인이 머물던 곳이 아닌 식당칸 근처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고인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 오전 9시11분 어머니에게 '엄마 배가 침몰해. 어떡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자 고인은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어. 학부형하고 연락해야 되고 배터리도 없으니 얼른 끊자"라고 답했다.

이후 언론 오보를 통해 '전원 구조' 소식이 전해졌으나 어머니의 전화에 고인은 답하지 않았다. 이후 어머니는 '구조됐으면 연락해', '사랑해 얼른 와', '예쁜 내 딸 보고싶어. 엄마가 미안해. 사랑해' 등 일주일째 문자를 보냈지만 끝내 전 교사의 답장은 없었다.

어머니는 학생을 탈출시키다 끝내 자신은 뭍으로 나오지 못한 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 딸이 먼저 빠져 나왔으면"하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은 그 상황에서 절대 혼자만 살아 나올 아이가 아니다"며 "살아 왔더라도 속상해했을 것이고, 생을 마감한 지금에도 학부형에게 '제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라고 사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에 이어 본인까지 3대째 교직 생활에 몸 담아 왔다. 어머니 역시 '선생'의 마음을 알기에 "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선생'을 천직으로 여기던 고인은 지난해 가르치던 1학년 학생들이 진급하자 2학년 담임을 자청했다. 어머니는 "딸은 같은 학생들을 3학년까지 맡아 '예쁘게 졸업시키고 싶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고 말했다.

이 뜻을 아는 어머니는 팽목항에서도 딸이 담임을 맡았던 2반 학생들의 생사 여부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자신의 딸이 발견된 지금에도 어머니는 "남은 학생들이 하루 빨리 발견돼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전씨의 외삼촌 역시 "팽목항에서 숨진 학생들의 학부모가 찾아와 '우리 아이 잘 보살펴 줘 고맙다'고 하더라"며 "평소 학생들에게 고인의 행동을 전해 들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벌개진 눈으로 딸의 이야기를 이어가던 어머니는 최근 계속해서 딸에게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라고 말한다고 했다.

'엄마랑 오래 못 살아서 미안해. 그런데 엄마, 나 괜찮았어? 잘했어?'라고 딸이 자신에게 묻는 것만 같다는 어머니는 딸에게 '괜찮아, 잘 했어'라고 마음으로 답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35일째를 맞은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비구니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도를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2014.5.20/뉴스1 © News1 정회성 기자


딸의 사고 소식이 알려지기 전, 사고 발생 6일째까지 평소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묵묵하게 업무를 처리한 고인의 아버지 역시 담담하게 빈소를 지켰다.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딸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주변에 내색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딸의 사연이 지난달 22일 보도되자 23일 아침 산업부에 사실을 알리고 휴가를 낸 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좋지 않은 개인일이 회사에 알려지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까봐 그랬다"며 "딸이 살아서 돌아와도, 시신으로 발견되도 조용히 일을 진행하려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는 절대 남에게 권위를 내세우거나 하지 않는 성격"이라며 "자상하고, 딸에게는 '딸 바보' 그자체였다"고 전했다.

아버지의 성격은 딸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전 교사는 평생 부모 속 한 번 썩여 본 적 없는 효녀였다. 사춘기 시절 모진 말 한 번 내뱉은 적 없던 예쁜 딸이었다. 전씨의 외삼촌은 "요즘 세상에도 저런 천사같은 아이가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전제구씨는 가끔 "살아도 힘든 세상이다. 결혼하려면 힘들고, 애 낳으려면 힘들고, 병 걸리면 힘들고, 살아도 힘든 세상이다"라고 어머니를 위로한다고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래도 살면서 행복한 일도 많잖아"라고 답하면서도 또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어머니는 딸과 수백명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간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직업 의식을 갖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산다면, 앞으로 이같은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배를 조심해서 운전하고, 사고가 났을 때 아이들과 탑승객들을 신속하게 구출했더라면…"이라며 "숨진 선생님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직업의식을 발휘했다. 그런 삶이라면, 인생이 짧아도 잘 산 것이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jung907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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