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허재경 기자 = 삼성전자와 애플의 세기의 특허전쟁 '1라운드'가 끝났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 재판부가 삼성전자의 애플 특허 침해에 따른 배상액을 배심원 평결 수준인 9억2900만달러(약 9900억원)로 1차 1심 최종 판결을 내렸다.
세계 10개국에서 30여건으로 소송이 맞붙어있는 두 회사 입장에선 미국 특허소송의 무게감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은 애플의 홈그라운드인데다, 단일지역으로 중국과 함께 가장 큰 스마트폰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접전지역에서도 미국 특허소송 결과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심 결과에 대해 삼성전자가 즉각 항소했지만 애플 안방인 미국에서 뒤집기는 힘겨워 보인다. 때문에 호사가들은 3년동안 이어진 두 회사의 특허소송 1라운드가 막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3월말 다른 제품에 대한 2차 특허소송전이 예정돼 있는 가운데 현재까지 싸움에서 두 회사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봤다.
◇애플, 돈은 챙기지만 '혁신없이 특허로만' 부정적 이미지 남겨
일단 표면적 승자는 애플이다. 아직 3심제로 운영 중인 미국 법정의 최종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애플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건 자명하다. 무엇보다 1심 판결로, 애플은 삼성전자로부터 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낼 공산이 높아졌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에, 배심원단으로부터 압도적인 점수를 얻어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안방 프리미엄까지 감안하면 3월말부터 삼성전자와 2라운드로 진행될 2차 특허소송 분위기 역시, 긍정적으로 끌고갈 가능성 또한 많아졌다.
부수적인 효과 또한 크다. 법원 최종 판결이 1심 결과로 완전히 굳어질 경우, 삼성전자에게 '카피캣(모방꾼)'으로 덮어씌운 애플의 전략 또한 그대로 적중될 모양새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애플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삼성전자에겐 적지 않은 부담이다.
하지만 '혁신'으로 각인됐던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특허소송에 주력하면서 심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미국 내에서조차 "애플이 너무 정략적인 특허소송에만 힘을 낭비하면서 정작 중요한 제품 혁신은 게을리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일방적인 '애플 편들기' 논란 또한 짐이다. 현재 제3국에서 진행 중인 두 회사의 특허소송을 살펴보면 미국처럼 전적으로 애플 손만 들어주는 곳도 드물다. 심지어 한국에서조차 삼성전자와 애플은 '2승1패' 정도의 전적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상승...막판 가처분 승리로 성과
반면, 삼성전자의 내상은 만만치 않다. 우선 1심 판결에 항소했지만 만약, 뒤집기에 실패한다면 당장 물어내야 할 보상금(약 9900억원)이 천문학적이다. 10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100만대나 팔아야 한다.
또 변호사 수임료 등 애플과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들어간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물리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지성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부회장은 애플과 소송을 벌인지 2년도 채 안된 시점인 2012년까지 들어간 소송비용만 2억달러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모방꾼'이란 치명적인 오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점도 삼성전자에게 뼈아프다. 글로벌 IT업계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여겨온 삼성전자 입장에선 두고두고 곱씹게 될 굴욕적인 오점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가져간 유무형적 가치도 무시할 순 없다. 우선 글로벌 IT업계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애플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만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선 브랜드 인지도다.
실제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조사업체인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애플과 특허소송을 시작한 지난 2011년 17위(234억3000만달러)였던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엔 8위(396억100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현재 삼성전자 전체 실적 가운데 약 70%를 차지하는 스마트폰 중심의 IT모바일(IM) 사업부 위상이 적지 않게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특허소송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에서 확실한 1위 자리 굳히기에 들어간 상태다. 시장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 분석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32.3%의 시장점유율로 15.5%에 그친 애플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최근 글로벌 기업인 구글 및 시스코 등과 함께 특허 공유 동맹까지 결성하며 애플과 달리, 소모적인 특허분쟁에서 벗어나 건전한 IT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노력도 호평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보면 애플에게 손을 들어줄 수 있겠지만 양 사가 특허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얻어간 무형의 가치 또한 돈을 환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며 "양 사의 특허소송에서 어느 한쪽이 확실하게 우위를 가져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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