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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부재 '소니 제국'의 쓸쓸한 몰락…신용 '정크'로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2014-01-27 12:03 송고 | 2014-01-27 20:47 최종수정
© 로이터=뉴스1


워크맨, 바이오 PC, 트리니트론 TV 등 내놓은 제품마다 혁신의 대명사로 전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한 때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로 군림했던 '소니 왕국'이 몰락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7일(현지시간) 일본 소니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의 '투자적격'에서 '투자부적격'으로 1단계 낮췄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12월 피치로부터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은 지 2년 만에 무디스로부터 '정크' 선고를 받은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소니의 몰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혁신성의 실종을 들었다. 혁신으로 부상한 기업의 경우 더 이상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순간부터 몰락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저서 '스티브 잡스'에서 혁신은 자신의 가진 역량에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대를 초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언급했다.
애플이 2000년대 들어 아이팟으로 혁신기업의 명성을 구가한 것처럼 1980년대 소니는 글로벌 소비자들에겐 혁신기업 그 자체였다. 문제는 '가전 왕국'을 지키기 위해 '월드베스트 제품'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지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surprise)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애플의 '아이팟'이 등장하자 '워크맨'에 쏠렸던 소비자의 관심은 새로운 혁신기업인 애플에 집중되고 '워크맨'은 쓸쓸한 퇴장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후 새로운 소비시장을 창출할 만한 '진정한 혁신'이 없었던 소니는 후발주자와 경쟁하고, 결국 추월당하는 악순환을 계속 겪어야 했다.

결국 2002년 한 수 아래라고 치부했던 한국의 삼성전자에게 기업가치를 추월당했다. 2000년까지만 해도 소니의 시장 가치는 삼성의 약 4배였으나 이를 기점으로 삼성에게 추월당한 소니는 역전에 실패했다.

지난해 1~9월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1578억9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전 세계 IT·전기·전자 업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소니는 이보다 약 30%에 불과한 533억4800만 달러로 7위에 그쳤다. 영업이익 역시 20억253만 달러로 삼성전자의 265억3660만 달러의 10%에도 못 미쳤다.

27일 시장조사기관 NPD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북미 초고화질(UHD) TV 시장에서 매출 규모 기준으로 11월 48.3%, 12월 49.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처음 북미 시장에 UHD TV를 선보인 이후 4개월 만에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 몰락의 이유...'월드 베스트' 명성이 발목 잡아

소니의 몰락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시도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고 있는 점은 소니가 지나치게 자사의 기술력을 맹신했다는 점이다.

소니는 기술 공유로 시장을 늘려가기보다는 자사기술을 표준화하는 전략에 매달리며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른바 기술의 갈라파고스 늪에 빠진 것이다. 즉, 고립된 채 내부적으로만 진화하다가 다른 환경과의 융합 기회를 놓쳐 도태되고 말았다는 설명이다.

소니가 VCR 시장에서 자사의 기술방식인 베타 방식을 고수하며 시장 독점을 노리다가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인 경쟁업체 마쓰시다의 VHS 방식에 백기를 든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소니는 2002년 VCR 사업을 포기했다.

이와 같은 일은 모바일 시장에서도 반복됐다. 보다 대중적이고 저렴한 제품에 주력했던 애플과 삼성과는 달리 자사의 보다 완벽하고 고급 기술을 고집하며 진입 시기를 늦추다가 소비자 트렌드와의 접목점을 놓치고 말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소니는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이 3.5%로 7위를 기록 중이다. 이 분야의 1위 기업 31.4%를 차지하고 있는 역시 삼성전자다.

전문 경영인 체제 고집이 조직의 관료화 불러왔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 경영 훈련을 받은 CEO들은 과감한 모험정신으로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최근 단기 실적을 대외적으로 보이는 데 급급해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투자를 늘리는 데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CEO들은 비용감축과 구조조정 등에 집중하며 갈 길 바쁜 소니의 행보를 늦추고 있다. 기업 혁신의 적으로 지적돼고 있는 관료화, 고립화, 안일주의가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혁신'과 '경쟁력'의 실종

소니의 몰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혁신의 실종이었다.

특히 소니가 차세대 주력상품으로 기대를 걸었던 스마트폰 부문은 혁신성을 상실한 채 이미 포화상태가 돼버린 '레드오션(red ocean)'에서 애플·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소니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1946년 일본 도쿄에서 모리타 아키오와 이부카 마사루에 의해 '동경통신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1955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개발해 기반을 잡은 후 1975년엔 초소형 휴대용 라디오를 개발하고 이때 비로소 '소니'라는 브랜드명이 회사명이 됐다.

1979년 출시한 '워크맨'은 소니의 운명을 바꿨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매료시킨 이 작은 제품이 소니를 세계적인 전자제품 기업으로 자리매김시킨 것이다.

이후 워크맨은 기술 혁신의 대명사였고, 전 세계 기업인들은 소니의 경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열을 올렸다.

이후 소니는 철옹성 같은 전자왕국을 구축했다. 워크맨은 물론, 컬러 TV, 비디오 플레이어, 비디오카메라, CD 플레이어, 게임기 등 소니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소비자들은 열광하며 제품에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소니를 글로벌 기업으로 이끌었던 워크맨은 지난 2012년 12월 33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영원히 생산이 중단됐다. 이 시점이 훗날 소니에 어떤 의미로 기억될 것인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이제 '혁신기업 소니'의 명성은 사라지고 있고 '한때 일류 제품'이란 기억만 남게됐다. 27일 소니에게 부여된 '투자부적격' 신용등급은 혁신으로 일어선 기업은 혁신을 멈추는 순간부터 몰락이 시작된다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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