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데보라 스미스 '오역' 논쟁…쟁점은?
뉴요커, LA타임스 등 해외서도 오역 논란
데보라 스미스 "번역은 원본과 유사한 효과 거두는 것"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작가 한강과 공동 수상했지만 그후 '오역' 논란에 휩싸였던 영국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30)의 번역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는 1월15일자 잡지의 '한강과 번역의 복합성'(Han Kang and the Complexity of Translation)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스미스가 영어로 번역한 '채식주의자'(The Vegeratians)와 '소년이 온다'(Human Acts) 등을 옹호하는 논조로 평가했다. 이 기사에 이어 스미스 역시 자신을 향해 제기된 오역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오는 19~22일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대회 국제인문포럼’에 초청된 스미스는 20일 ‘언어와 문화다양성’ 섹션에서 ‘우리가 번역에 관해 이야기할 때 말하는 것들’이라는 주제로 발표하는데 그 발표문을 미리 공개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문학평론가인 조재룡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가 지난해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실은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에서 스미스의 번역이 한국어에서 생략된 주어를 틀리게 옮겼다고 비판했으며, 김번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도 학술 논문에서 스미스가 소설 속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번역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에서 맴돌던 논쟁은 지난해 9월 차스 윤 이화여대 교수가 LA타임스에 '한강 원작의 베스트셀러 '채식주의자'는 어떻게 한국에서 논란을 일으켰나'(How the bestseller 'The Vegetarian,' translated from Han Kang's original, caused an uproar in South Korea)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면서 해외로까지 확산되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채식주의자 번역에 대한 지적은 두 방향에서 이뤄졌다. 우선 '팔'(pal, arm)과 '발'(bal, foot)에 대한 혼동, '식욕'(a good appetite)을 '유능한 요리사 이상의 존재'(a more than competent cook) 등으로 착각하고 옮긴 것, 한국어 대화나 설명에서 생략된 주어를 엉뚱하게 붙이는 것 등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실수들이 오역의 예로 지적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쉽게 수정가능한 그런 실수들보다도 톤(tone, 전체적인 분위기)과 목소리의 변화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스 윤 교수는 "톤과 목소리에서 채식주이자 영역본은 원본과 다른 작품이 되었다"면서 "담백한 현대식 문체의 '레이먼드 카버'를 공들인 언어로 꾸민 '찰스 디킨스'로 만든 셈"이라고 밝혔다.
반면 뉴요커 1월15일자 '한강과 번역의 복합성'은 스미스의 번역에 대해 서구 독자들을 위해 변형을 가했고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작가의 톤을 잘 반영했다는 논지를 폈다. 기사는 "많은 서구의 독자들이 현대 한국소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내레이터(화자)의 수동성"이라고 지적하면서 "하지만 스미스는 서구 독자들을 위해 이보다는 (수동성을 줄이고) '갈등과 긴장'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용한 저항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우화로서, 한국문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며 작품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스미스의 발표문에는 국내외에서 지적하는 두가지 층위의 오역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스미스는 "모든 번역가들은 정확성에 깊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동시에 모든 번역가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하기도 합니다.(중략)제가 부주의와 오만함으로 한강의 작품을 배신했다는 게 사실일까요? 물론 제가 한강을 숭배할 정도로 사랑하고 그녀의 작품을 아주 천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아직 마스터하지 못한 언어를 겁 없이 번역하겠다고 나서면서 그렇게 된 것일까요"라면서 기술적인 오역들에 대한 대답을 유보했다.
이어 "이제 제가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지 4년이 되었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는 7년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곧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이 아니며, 실제로 그것을 하는 것처럼 어떤 것도 번역하는 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라며 '사실상 완벽한 번역이란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폈다.
다만 스미스는 톤에 대해서는 "어떤 이들은 제 번역이 시적이기보다는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문체의 원작을 지나치게 시적으로 변형시켰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하지만)분명히 절제된 형태의 미묘하게 시적인 문체가 그(한강의 작품) 근저에 흐르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저는 과도하게 수사적인 영어 문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으며, 무의식적으로도 그러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밝혔다.
또 번역에 대해서 "많은 경우 번역은 서로 다른 수단에 의해 유사한 효과를 거두는 일에 관한 것"이라며 번역본이 주는 '효과'를 강조한 견해를 피력하면서 "번역 규범이 나라마다, 맥락에 따라 얼마나 많이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개인의 접근법을 어떻게 다르게 형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는, 그저 단순히 지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차이점을 향해 가는 일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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