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노래·DVD만 빼고 다 유죄인 이유는…

법원, 사상 처음 현직 의원 '내란음모' 유죄· 중형 선고
내란음모 주체 'RO' 인정…"국헌문란 목적·내란실현 위험 있다"
'적기가 제창' 등 제외...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도 대부분 유죄

(수원=뉴스1) 김수완 기자 =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사건 결심 공판일인 지난 3일 이 의원이 수원지방법원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figure>한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국회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실형을 선고받는 일이 벌어졌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정운)는 17일 내란음모·선동,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동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52)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다만 '적기가 제창' 등 일부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날 재판부는 470여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통해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시(說示)하며 내란음모 사건의 판단기준을 사상 처음으로 제시했다.

◇유죄 판결의 전제…'RO모임' 존재

우선 이번 판결에서 가장 쟁점이 된 것은 이른바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존재 여부다.

현행 형법상 어떤 범죄든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범행의 '주체'가 필요하며 이번 재판에서는 그 주체로 'RO모임'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검찰 측은 지난해 5월10일과 12일 곤지암 수련원과 합정동 마리스타수도회에서 있었던 회합을 RO모임이라고 주장했다. 즉 이 모임에서 총기제조 등 구체적인 내란준비·음모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비밀조직 회합이 아니었다"고 계속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17일 판결을 통해 "이 회합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철저한 보안수칙과 지위통솔체계에 의거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RO의 구성원들이라고 볼 수 있다"며 '내란음모의 주체'로서 RO모임을 인정했다.

또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으로 추측할 수 있고 이 의원은 이 모임의 총책에 상당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주체사상 학습' 등…'국헌문란의 목적' 인정

'범죄의 목적'이 요구되지 않는 다른 형사범죄와 달리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헌문란의 목적' 또한 필요하다.

이 요건에 대해 재판부는 회합에서 논의된 일련의 주제들을 언급하며 이 의원 등에게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제시한 근거들은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로 다가올 전쟁이 곧 강력한 혁명적 계기' 등을 언급한 이 의원 강연 ▲전국적 범위에서 국가기간시설·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활동을 하자는 '전시 후방교란 수단' 논의 등이다.

재판부는 이같은 근거들을 설시하며 결국 "이 의원 등은 주체사상과 계급투쟁론에 입각한 혁명관에 기초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남한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전시의 후방교란 활동을 통해 무력에 의한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과 헌정질서 파괴를 꾀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 내란준비 행위, 내란 실현가능성·위험성

이번 재판에서 쟁점이 됐던 부분 중 하나는 이 의원 등이 논의한 내용만으로 실제 '내란행위'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재판과정에서 제기된 일각의 비판은 "이 의원 등이 사실상 '헛꿈'을 꾸는 것에 불과했다면 굳이 처벌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RO모임' 참여자들 사이에 실제 내란실행의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내란의 실현가능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회합에서 벌어진 이 의원의 강연, 집단적 결의 재확인 등 과정에 대해 "내란 실행의 불가피성을 납득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며 "폭동의 내용에 비춰볼 때 단순한 추상적, 일반적 등 합의의 정도를 넘어 특정한 범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라는 것이 명백히 인식될 정도였다"고 판시했다.

또 RO 조직원들의 범행 실행의지, 모의한 범행의 구체성 등을 보더라도 내란의 실현가능성은 넉넉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가스·유류시설, 전기·통신시설, 철도·도로망, 화학약품 보관시설, 레이더기지 등 시설의 종류 ▲평택의 유류저장소, 서울 종로구 혜화동과 성남시 분당구의 통신시설 등 시설이 위치한 지역이 설시됐다는 것이다.

또 폭탄제조·테러의 실례와 함께 이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경로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내란음모 유죄…국보법도 대부분 혐의 인정

재판부는 이같은 판결이유를 제시한 뒤 결국 내란음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내란모의를 통해 자유민주적 국헌 질서에 실질적인 위협을 초래하는 등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이 의원의 경우 특별사면, 복권 등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가 두차례에 걸쳐 관용을 베풀었음에도 반성하지 않고 범행에 나아간 점을 보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적기가 제창' 등 일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적기가 제창'의 경우 이 의원이 단순히 이를 따라불렀을 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검사가 법정에서 재생하지 못한 일부 북한 영화 DVD에 대해서도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abilityk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