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터 막았다 풀었다…수뇌부 공백에 현장 경찰 "부탁드립니다"
전농 트랙터 막은 경찰, 야당 항의에 28시간 지나 길 열어
경찰청장·서울청장 직무대행 체제…집회 관리 '혼선'
- 장시온 기자
(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동조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경찰의 집회 관리도 혼선을 빚고 있다. 현장 경찰관들은 "중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국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놨다.
경찰 안팎에선 탄핵 정국으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는 만큼 직무대행 수뇌부가 명확한 지침을 세워 현장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1일 오후 12시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서울 서초구 남태령역 인근에서 트랙터 30여대와 화물차 50여대를 몰고 서울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막혔다. 경찰은 "트랙터 30여대가 서울 시내에 진입하면 극심한 교통 불편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제한 통고를 했다.
시민단체들은 반발했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경찰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지난 2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을 항의 방문한 뒤에야 트랙터 10대만 진입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28시간 30분 만에 경찰은 길을 열었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는 동안 현장에선 아찔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집회 참가자 1명이 실신해 구급차가 출동하는가 하면 조합원 2명이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 일부는 트랙터로 경찰 버스를 들어 올리려고 했고 트랙터 유리창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집회 참가자 1명은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현행범 체포돼 경찰차에 격리됐다.
현장 경찰들도 집회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 통제에 따르지 않거나 소음 기준을 위반하는 등 불법 행위가 확인돼도 현장에서 조처하기보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다른 곳에 가서 해달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집회 현장에 출동한 한 기동대원은 "충돌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일선서 정보관도 "지금 섣불리 현장에서 판단하고 움직였다가는 오해받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방배경찰서 관계자는 "법만 따지기보다는 지금 시국을 고려해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계엄 사태 이후 집회가 매일 대규모로 열리면서 안전사고 우려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안국역에서 열린 보수집회 맞은 편에는 유튜버 2명이 확성기를 설치하고 "윤석열 파면"을 외치다 보수집회 주최 측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이날 관할서에는 시민들의 민원도 잇따랐다.
같은 시각 헌법재판소 앞에서도 일부 시위대 간 충돌이 발생해 인근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다. 양측의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반대 성향 집회에 찾아가 라이브 방송을 하며 충돌을 유도하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수뇌부 공백 상태라도 명확한 집회 관리 방침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청 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최소한의 통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도 "경찰 수뇌부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로 치안 공백이 우려된다"고 했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이날 "약간의 원칙이 무너지더라도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다"며 "평화적인 집회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zionwk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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