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밥상' 명인 고정순 "자연 닮은 제주 향토음식 발굴 지속돼야"

[맛있는 향토일]고정순 제주향토문화연구소장
사계절 밥상·쉰다리 등 제주음식 발굴·전파 기여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 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

고정순 제주향토문화연구소장/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2011년 3월. 제주시 용담1동에 위치한 세심재 갤러리(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그림이나 조각품이 전시돼야 할 갤러리에 보리밥과 구수한 된장 냄새가 퍼졌다.

이 갤러리에서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먹은 음식을 제주대학교의 고증을 통해 재현한 '추사 유배밥상'이 전시 중이었다.

전시회에는 추사가 제주에서 유배하면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근거해 민어 등 제주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다양한 먹거리와 추사가 실제 즐겨 먹었던 음식을 바탕으로 만든 밥상이 차려졌다.

이 추사밥상을 성공시킨 인물이 바로 제주도 제2호 제주향토음식 명인 고정순 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소장이다.

고 소장은 식품영양학과로 학위를 땄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요리와는 큰 인연이 없었다. 30~40대 교사와 교수의 길을 걷던 그는 제주문화포럼 향토음식연구회와 슬로푸드운동한국위원회 부회장을 맡으며 점차 제주 음식에 눈을 뜨게 됐다.

음식을 배우려고 전국의 유명한 요리사들을 찾아다니던 그는 사찰음식을 접하고 "바로 이거다"라고 외쳤다.

고 소장은 "사찰음식은 제철 재료를 사용하고 소박하며 복잡한 조리를 거치지 않고 무엇보다 먹을만큼 만들어 음식을 버리지 않는데 제주 음식과 공통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고 소장은 사찰음식을 토대로 고기와 생선을 더해 제주다운, 그러나 현대인의 입맛을 놓치지 않은 향토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를 명인이라는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음식은 사계절 밥상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제주의 사계절을 맛볼 수 있는 제철재료로 제주인들이 과거 먹었던 음식을 완성해 극찬을 받았다.

고 소장은 "제주 음식을 보면 자연이 느껴진다. 각 계절마다 산, 바다, 밭, 돌 등 자연에서 생산하고 채취한 것들을 먹고 저장과 조리방법 역시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고 했다.

고 소장은 2005년 당시 대한민국 단일요리대회중 전국 최대 규모인 서울국제요리경연대회에 '제주의 사계절 밥상, 사라져버린 제주의 보양식'을 주제로 참가해 금상을 수상했다.

그는 "전국 팔도의 음식이 모두 참가한 행사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12첩 반상 등 화려하고 근사해보이는 요리들이 즐비해 처음에는 내가 내놓은 제주 밥상이 초라하게 느껴졌다"며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정형화된 식상한 음식보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제주 밥상을 더 신선하게 바라본 것 같다"고 전했다.

추사 유배밥상(제주향토음식문화연구소 SNS)/뉴스1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은 '쉰다리'다. 먹다 남은 쉰 밥을 발효해 만든 음료인 쉰다리는 세계적으로 힐링푸드로 주목받는 요거트의 제주버전이라 할수 있다.

고 소장은 "쉰다리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발효식품으로 보리밥으로 만든 보리 쉰다리는 쉰 밥을 버리지 않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만든, 절약이 몸에 밴 제주인의 알뜰함과 지혜가 만들어낸 음료"라고 했다.

고 소장은 제주 향토음식이 나아가야할 길도 제시했다.

그는 "향토음식 보호구역을 설정해 그 지역을 직접 방문해야 먹을 수 있는 독특한 그 지역만의 먹거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갈치나 옥돔국 등 기존에 잘 알려진 음식을 새로운 종류로 개발하고 빼데기떡, 양에나물, 해물김치, 마농지 등 묻혀있던 향토음식을 발굴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제주 향토음식은 식재료의 변화로 그 고유의 전통성이 많이 바래가고 있고 보존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며 "지금이라도 묻혀있는 우수한 향토음식을 발굴하고 이어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반편생을 향토음식 발전에 매진한 고 소장의 앞으로 계획은 평범한 어머니였다.

그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차려주는 어머니로 되돌아고 싶다"며 "자녀들은 어머니가 자랑스럽다고 하지만 일에만 신경쏟다보니 정작 내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해준 것 같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