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림 "칸→아카데미行, '드라이브 마이 카'는 엄청난 운명" [N딥:풀이]①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냐 말하기도"
"아카데미 현장 참석, 대선배 윤여정 시상 때 환호성"
- 정유진 기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이어 약 2년만에 다시 한 번 칸 영화제 본상 수상과 아카데미 수상을 동시 이뤄낸 아시아 영화다. 지난해 제 74회 칸 영화제에서는 각본상을, 올해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다. 봉준호 감독은 일찍이 이 영화를 두고 "2021년 최고의 영화"라는 극찬을 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을 원작으로 한 '드라이브 마이 카'는 신흥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유려한 각본과 깊이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아내의 죽음을 경험한 후 상실감에 빠진 배우 겸 연극 연출가 가후쿠(니시지마 히데토시 분)가 히로시마 연극제에 초청돼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로 고용된 미사키(미우라 토코 분)와 교류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이 영화에는 독특하게도 한국인 연기자가 세 명이나 등장하는데 배우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그 중에서도 극 중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소냐 역을 맡은 '한국 배우 이유나'를 연기한 박유림(29)은 영화 속에서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감동을 준다.
박유림은 국내 관객들에는 아직 낯선 배우다. 2017년 데뷔해 '드라마 스테이지-낫 플레이드' '추리의 여왕 시즌2' '제3의 매력' '블랙독' 등 드라마에서 단역 및 조연을 해왔지만, 아직까지 이름을 알릴만한 출세작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세 차례에 걸친 오디션 끝에 '드라이브 마이 카'로 스크린에 데뷔하게 됐고, '드라이브 마이 카'의 세계적인 성공 덕에 배우로서 자신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드러낼 기회를 얻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 속에서 가후쿠가 연출하는 '바냐 아저씨'는 다국적 배우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자신의 배역을 연기하는 특별한 연극이다. '응시'와 '경청'을 이야기 하는 영화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수어를 사용하는 이유나는 관객들의 몰입을 끌어내는 존재다. 이유나의 호소력 짙은 눈빛과 손짓을 통해 관객들은 발화되지 않은 누군가의 마음이 '말'이라는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들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경험한다. 이유나를 연기한 박유림의 섬세한 연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녀 온 박유림은 '드라이브 마이 카'를 "운명"이라고 소개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국내가 아닌 해외 거장이 먼저 발굴해 연마하고 빛낸 '원석', 박유림을 만났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다녀왔다. 기분은 어떤가.
▶일단 처음 느껴보는 즐거움이었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다녀와서 그런지, 레드카펫에 들어서기 0.1초 전에 너무 설레더라,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하면서 들어갔다. 너무 재밌고 부국제에서도 내가 이런 환호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받아본 적이 있을까…엄청 기분 좋은 환호와 반가움을 표현 해주셔서 행복하고 재밌고, 그랬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찍은 사진도 봤다.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됐나.
▶영화로만 보던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 '지금 저기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있는 거야?' '드라이브 마이 카'를 알고 계시더라. 파티 끝나고 나가려고 감독님 배우들 다 있는데 엘리베이터 내리자마자 다 알아보시더라. 감독님 배우들, 인사하고 가셨는데 나는 가기 전에 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해서 박해수 배우님과 같이 찍은 사진을 준비해서 안 되는 영어를 열심히 번역 애플리케이션과 함께 해서 '나 같은 회사 배우다. 너무 빅팬이다. 같이 사진 찍어도 될까?' 해서 찍은 거다. 내가 팬이라고 하니까, '땡큐' 이러면서 뭐라고 하셨는데 사실 그 대화를 나눈 곳 뒤가 댄스장이어서 음악 소리가 컸다. 나도 큰 소리로 얘기해서 배네딕트 컴버배치가 내 얘기를 들으셨을까 했었다. 대화라고 할 만큼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대선배인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갔었다. 윤여정과 인사는 했나.
▶대기를 할 때라든가 하는 시간에 만나뵙고 싶어서 찾았는데 만나뵙지 못했다. 너무 아쉬웠다. 그렇지만 나는 윤여정 선생님이 시상을 하시러 나오셨을 때 직접 볼 수 있었다. 막 박수를 치고 나 혼자 소리 질렀다. 아마 그날 나온 선생님이 나오셨을 때 환호성 '톱10' 중 한 명이 나이지 않을까. 열심히 환호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박유림과 안휘태, 진대연까지 한국 배우가 세 사람이나 나온다. 셋은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함께 참석했는데, 현장에서 어떤 얘기를 나눴나.
▶오스카가 끝나고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갔는데, 가기 전에 셋이 밥을 간단히 먹었다. '그때가 너무 꿈 같다. 이 오스카에 한국 배우가 대체 몇명이나 왔을까, 지금까지?' 그런 얘기를 하면서 저희 셋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진짜 대단한 곳에 다녀왔구나' 이런 대화를 했다. 또 오고 싶다고 얘기하고. 나는 죽기 전에 무조건 와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오디션 요청을 받았다고 들었다. 오디션을 할 때는 어떻게 준비했고, 어땠나.
▶특이한데 특별했다, 일단은 그 준비하는 과정이 되게 재밌었다. 오디션을 하면 만나기 전까지 오디션이 너무 어렵고 진짜 너무 큰 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오디션 준비 과정이 전혀 그렇지 않고 하고 싶고 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하는 과정이 다 되게 특별했다. 내 성격은 뭐 하나에 빠지면 각성돼 있다고 해야할까, 그런 스타일이다. 사막을 걷다가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다. 오아시스까지 엄청 뛰어가는 그런 과정.
-3차까지 오디션을 봤다고 들었다. 어떤 형식으로 했었나.
▶1차는 한국에서 감독님과 줌으로 했고 2차 때는 한국에 감독님이 오셨다. 그리고 2차 때도 한국에서 했다.
-경쟁자는 몇명 정도 됐나.
▶나도 관심이 있으니까 물어보는 성격이다. 그런데 막 정확히 몇명이라고는 듣지 못했다. 오디션장에 가면 다른 배우들도 보고 관찰한다. 어떤 옷을 입고 왔나, 긴장 많이 했나, 이런 것도 나랑 비교해서 본다. 오디션에서 들리는 소리라든지 분위기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고 얼마나 긴 시간 있는지 그런 것들에도 관심이 많다. 요즘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지만 그때는 코로나 전이어서 그런 것들을 많이 관찰했다.
-관찰 결과 무엇을 볼 수 있었나.
▶나는 '내가 맞다' 하는 확신이 있었다.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의상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나는 진짜 내가 즐겨입을 만한 옷들과 내가 그 자리에 섰을 때 불편하지 않은 옷을 선호해서 정말 그대로 갔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게 맞아, 감독님도 이걸 원하실거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디션을 준비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서 자신감이 차 있었던 상태였다.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간 거니까. (마음의)준비가 없을 때보다는 확실히 자신이 있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2차 오디션 때부터 만났겠다. 그 과정에서 감독과 어떤 얘기를 나눴나.
▶첫 번째 만났을 때는 대화도 하고, 오디션 장면의 대사를 한 번 읽어봐줄 수 있겠냐고 하셔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시나리오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의 느낀 점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이 있었고, 또 '바냐 아저씨' 오디션 장면 있는데 그것을 수어로 마음대로 지어서 해도 되니까 내가 창작해서 보여달라 하셨다. 수어 연습을 아직 안 했을 때니 손수 지어서 준비 해갔다. 그때 수어 없이 대사를 같이 하는 연기와 수어만 하는 연기 두 개 다 했었던 것 같다. 진짜 후회하기 싫더라. 그래서 감독님한테 하고 싶은 얘기를 정말 외워서 갔다. 대본을 제본해서 그 앞에 메모지에다가 순서를 매겨서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다 정해서 갔다.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보통 때는 그때그때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그런 사람인데 그때는 계획적으로 했었다. 내가 그랬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였을까. 이건 어디 가서 얘기한 적이 없었는데, 감독님이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아니냐"고 칭찬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대본과 배역에 대해 분석을 많이 해갔다는 의미인가.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찍는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찬사'에 가까운 칭찬인 것 같다.
▶내가 어느 정도로 분석을 했느냐면…내가 그 당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잠을 못 자 우울한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 자다가 깨면 울 때도 있었고, 잠을 너무 자고 싶은데 잠이 들지 않아 꼬박 밤을 샌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만났을 때는 잠에서 깨면 작품 생각을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생각하다보니 잠을 자지 않는 시간들이 채워지더라. 오디션 장에서는 그런 걸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었던 자리였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했다. 그때 감독님이 장난스럽게 해주신 칭찬이었는데 오디션장을 나오는 내 기분이 좋더라.
-그때 느꼈던 벅찬 감정 같은 것들이 지금도 전달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느낄 만큼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내가 엄청 소극적이서 '어필'을 할 줄을 잘 모른다. 항상 오디션장에 가면 나를 어떻게 어필해야 될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2차 오디션을 할 때 수어로, 수어 사전까지 찾아서 감독님과 거기 계신 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서 갔다. 그걸 오디션 때 잊고 있다가 생각이 났다. 감독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라고 물어보셔서 내가 '네 저 있어요' 하고 저 수어로 준비한 걸 했다. 감독님이 무슨 뜻이냐고 물으셨고 '제가 다음에 만나게 되면 그때 가르쳐드릴게요' 하고 나왔다. 내가 진짜 평상시에 그런 용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진짜 용기를 냈던 순간이었다. 그런 게 너무 재밌었다. 감독님이 되게 엄청 웃으시고 그분들도 되게 놀라셨다.
-작품에 대한 확신 같은 게 있었나보다. '꼭 해야겠다' 하는 확신이 있어야 용기도 생기고 하는 거 아닌가.
▶ 사람이 선택적이다. 나는 치킨을 진짜 좋아한다. 그런데 근데 치킨이 단지 맛있어서 계속 먹는 거지 그 치킨을 튀기는 온도가 어떻게 되고 어떤 밀가루를 쓰고 이렇게 세세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까 진짜 이 작품은 내가 너무 하고 싶다, 이거 진짜 내가 안 하면 나 안 될 것 같다라는 그런 기분에 휩싸이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런 기분을 연기하면서 처음 느꼈던 것인가.
▶그전에도 느꼈을 것이다. 근데 그전에도 제 나름 열심히 하려고 계속 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열심히 해야하는지 정도를 몰라서 '이만큼'이 열심히 한 거겠지 하고 딱 거기 선까지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까 나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 당연히 그래서 오디션도 많이 안 되고 하다 보니까 그런 시간들 덕분에 내가 거기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게 됐다. '나 진짜 이만큼 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했었던 것 같다.
-'배우 박유림'으로 다시 태어났던 순간 같기도 했겠다.
▶다시 태어났다. 많은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
-불면증을 앓았다고 했는데,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나기 전까지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인가.
▶방황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는 건데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고 연기를 해야 하는 건지 연기를 안 해야 하는 건지 되게 헷갈렸었다. 오디션장에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과 나를 많이 비교하다 보니까 자신감도 떨어졌었고 자존감도 낮았던 시기였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연기 밖에 없는데 다른 직업은 없는데, 하면서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다가 내 존재에 대해서까지 생각을 하게 됐다. 계속 오디션 보고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안 되고 안 되고 하다 보니까 '내가 밥을 먹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까 당연히 잠도 안 오고 걱정도 많아졌다. 서른 살이 다 돼 가는데 서른 살이 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었나 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되게 무서웠다. 불안하기도 하다보니 잠이 안 왔고.
-연기를 한지 얼마 정도 됐을 때인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연기를 배웠었고 매체 연기, 그러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한 건 2017년도였다. 처음에 하다가 나는 욕심이 나는데 앞으로 나가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는 게 내 눈앞에 보이는데 나는 자꾸 멀어지더라. 그런 내 모습이, 내 자신이 너무 못마땅했던 것 같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한 것인가보다.
▶그래줘서 엄청 고맙다. 너무 특별하게 소중하다.
-이유나라는 배역에 강하게 몰입이 됐었다고 들었다. 이유나를 박유림 자신이라고 느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나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엄청난 운명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유나에게는 '바냐 아저씨'가 그런 기회였다. 그 '바냐 아저씨'의 대사 중에 정말 좋은 대사가 많지만 내가 오디션장에서 큼지막하게 써놨던 대사 중 하나가 아스트로프에게 하는 대사였다. 정확히 기억한다. '그 어두운 숲길을 걷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등불을 발견하면 아프게 하는 가시덤불이랑 무서움이랑 그런 것들을 전혀 느끼지 못할 거예요'라는 대사가 있다. 유나가 유산의 아픔을 겪고 그런 가시덤불이랑 무서운 동물 소리가 나는 어둠의 시간을 걷고 있다가 저쪽에서 등불을 발견했고, 그 등불이 '바냐 아저씨'라고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그 숲길에서 발견한 게 '드라이브 마이 카'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몰입될 수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운명이 맞는 것 같다.
▶내 거였다.
<【N:딥풀이】박유림 편 ①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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