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은 총재 "끝없는 교육열, 강남불패 신화 고착시켜"

집값-가계부채 문제 직언…"핵심은 대학입시-수도권 집중"
"구조개선 없인 악순환 반복…재정·통화정책은 임시방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7일 "교육열에서 파생된 끝없는 수요가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를 고착시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인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법은 통화·재정정책 같은 손쉬운 방편이 아닌, 대학 입학 정원의 지역 비례 할당 등 과열된 입시 경쟁과 수도권 집중에 대한 '구조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과 교육 정책의 패러다임 변화' 주제로 열린 한은-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공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폐회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잘 내려가지 않고 조그만 충격에도 급등하는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강남 부동산에 대한 초과 수요가 상시 잠재해 있는 사회 구조'를 지목했다.

이 총재는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교육이 중요해지다 보니 자녀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서울로, 또 강남으로, 전세로라도 진입하고자 한다"며 "이후 대학에 입학하면 또 다음 세대가 같은 목적으로 진입을 기다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과 수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무리 보유세나 다른 정책 수단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집주인은 전셋값 인상으로 전가하면 그만"이라고 분석했다.

구조적인 사회·경제 환경 자체가 부동산 가격 급등을 부채질하는데, 내수가 부진한 상황만 보고 순진하게 금리를 내릴 순 없다는 취지의 입장도 피력했다.

이 총재는 "이런 구조적인 제약을 개선하려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같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2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은 이 같은 악순환의 재발을 우려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한 번쯤은 악순환의 고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번 정부가 지난 20년의 추세를 처음으로 바꿔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의 거시건전성 정책 공조뿐 아니라 문제의 근저에 있는 입시경쟁과 수도권 집중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혁도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해 날 때 지붕을 고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며 "좋을 때 가만히 있지 말고 어려운 구조조정을 하라는 뜻"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수십 년간 증가해 온 가계부채, 반복되는 부동산 문제 등을 볼 때 우리는 해 날 때도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손쉬운 재정·통화정책을 통해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조정은 미뤄 왔다"고 평가했다.

가계부채 문제 완화는 해결이 긴요한 문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전 세계 최상위권 수준의 가계부채가 더 증가했다가는 조만간 수요 부족으로 경제 성장률을 낮추고 그 정도가 지나치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거품이 터졌을 때는 경제 위기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고 역설했다.

같은 날 심포지엄에서 한은 연구진은 대학 입학 정원을 지역 인구에 비례해 뽑도록 하는,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으로서 대담한 대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지역별 비례 선발제'로, 20년 전 도입한 지역 균형 선발제를 이제는 소규모에서 벗어나 크게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 총재는 "다소 파격적일 수 있지만 시도해 볼 만하다"며 "우리 입시는 누가 봐도 경쟁 과열된 상태로, 부모는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자기 삶과 노후를 소홀히 할 정도로 희생하나, 정작 우리 아이들은 지나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청소년기 행복을 빼앗기고 부모가 자식을 통해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한다고 여긴다"고 꼬집었다.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