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눈]보급 확대에 매몰된 전기차 정책…인프라·장기비전 제시해야
- 심언기 기자

(세종=뉴스1) 심언기 기자 = 배터리 충전식 기반의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밀어내고 차세대 모빌리티의 주류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내연기관 퇴출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도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다. '친환경·탄소중립' 바람을 타고 전기차 보급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업계도 이에 대응해 전기차 중심의 개발 및 사업재편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등록된 자동차 대수는 2500만여 대에 이르는데 그중 전기차는 40만대에 근접했다. 완성차업체는 전기차 공장을 신설하고, 정부는 2030년까지 이를 300만대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하에 대대적 지원책을 펴고 있다.
빛과 그늘처럼 전기차가 확산될수록 삐거덕대는 현장 불만도 늘어나고 있다. 전력수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데, 일각에서는 전기차가 급증하면 '블랙아웃' 사태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한다. 실제로는 전기차 보급에 걸리는 시간과 수요에 발맞춰 전력수급 용량을 차근차근 늘려갈 예정이어서 전력수급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러나 전력업계 관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전기차 공급이 늘어날수록 세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원전과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및 발전소들이 수도권과 먼 지방에 흩어져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대적 송변전선 확장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수용성을 이유로 송·변전선 확충이 지연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다, 한전 적자로 차질을 빚는 경우도 많아 조마조마한 상황이라고 한다.
송변전소 확충과 함께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갖춰나가는 과정도 지난하다.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전기차 및 충전인프라를 신설·관리·유지하는데 드는 비용은 추산하기조차 쉽지 않다. 아직까지 충분치 않은 전기차 충전소 숫자와 규격에 맞춘 설비를 갖추는 것 역시 순탄치 않다는 지적이다. 순환율이 좋지 않아 주차공간 역할에 그치는 공용·공공주택 충전 시설도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건축물은 일반적 가정·상업용 전력사용에는 충분한 수준으로 설계되지만 전기차 보급까지 상정해 전력설비를 구축해놓진 않은 실정이다. 향후 전기차 보급이 크게 늘면 문제가 될 여지가 상당하다. 공동주택 등의 전력체계를 전기차 충전을 감안한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 드는 비용 역시 천문학적이란게 전력업계 우려이다.
이처럼 인프라 및 배후시설 투자 과제가 산적한데 정부의 전기차 정책은 보급 확대의 초보적 수준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뒤처질 수 없다는 절박함은 이해하나, 켜켜이 쌓여가는 문제들이 지적돼도 숫자놀음에 매몰된 당국자들은 현장의 아우성에도 귀를 닫고 개선책 마련에 굼뜨다는 불만이 팽배한 현실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이 뭔가 그럴싸해 보이니 각각 장밋빛 수치를 제시하는 보여주기식 정책에만 급급하다. 반면 전력수급 정책이나 충전인프라 등 익히 예상되지만 해결이 녹록지 않는 문제들은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며 "전기차 보급량이 지금의 두 배 수준으로만 늘어도 상당한 부작용들이 제기될거다. 그때 가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상반기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전기차를 비롯한 급등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할 합리적 대안을 담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여주길 바란다. 특히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더해 2030년 300만대 전기차 보급까지 망라할 수 있는 정교한 대책을 담아내야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 전력생산 단가를 끌어내리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
환경부 역시 일회성 논란에 일희일비 말고 국내 전기차 생태계 전반이 상생 가능한 수준의 합리적 규제의 틀을 확고히 정립해 나가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전기차 충전기 보급사업의 차질 없는 이행이 전기차 생태계 초기 안착의 전제조건이란 사명감을 가지길 바란다.
eonk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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