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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폰도 여기자 출전기]30여초 남기고 '컷인'…눈물 솟구쳤다

사이클 입문 1년 기자…소백산 6개 고개 넘어 120㎞, 6시간 안에 완주

(영주=뉴스1) 차윤주 기자 | 2015-10-19 07:00 송고
소백산과 월악산 산악구단을 달리는 '백두대간 그란폰도' 대회가 18일 열린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 News1
소백산과 월악산 산악구단을 달리는 '백두대간 그란폰도' 대회가 18일 열린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 News1
18일 새벽 2시40분. 알람소리에 화들짝 놀라 깼다. 자정쯤 누웠을까. 긴장감으로 잔듯 만듯. 후다닥 옷을 주워입고 반포한강공원 주차장으로 내달린다.
 
새벽 3시30분. 신새벽이라 부르기도 이른 시각. '쫄바지'를 입은 수백 명의 무리가 제각기 관광버스에 오르고 있다. 너도나도 어디 상하기라도 할까 아껴가며 자전거를 싣는다. 십여대의 버스가 향할 곳은 경북 영주.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주최하는 '제3회 백두대간 그란폰도'가 열리는 곳이다.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우리나라 '자덕'(자전거 덕후의 줄임말. 자전거 타기를 몹시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장 손꼽는 대회 중 하나다. 단풍이 절정인 시기 소백산을 달리는 더없이 아름다운 코스에 완벽에 가까운 차량통제 등 라이더를 배려하는 경기운영으로 유명하다. 특히 자전거 시즌이 끝날 무렵이라 한해 닦은 기량을 시험해보려는 라이더들의 각오가 대단하다.
 
코스는 만만치 않다. '긴 거리 또는 위대한 인내'라는 뜻의 이탈리아말 '그란폰도'에 걸맞게 총거리 120㎞, 총고도 3500m(실제 상승고도 약 2500m)를 6시간 안에 달려야 한다. 평지라면 6시간을 평속 20㎞/h로 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큰 산(소백산·월악산)을 두개 넘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백두대간 그란폰도는 옥녀봉(고도 650m)부터 윗원터(370m)·귀내기(570m) 고개, 저수령(850m), 적치재(360m), 죽령(700m)까지 크고 작은 산과 고개 6개를 넘어야 한다. 선수급 라이더든 취미로 참가한 아마추어든 시작부터 끝까지 나 자신과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인내라는 단어가 꼭 들어맞는 이유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동양대학교다. 버스에선 늘 기절이다. 지난해 8월 로드바이크(사이클)에 입문해 오늘이 두번째 대회다. 기자는 올해 4월 화천DMZ대회를 나가본 게 대회 경력의 전부다. 대회 본부로 가 자전거와 몸에 달 배번을 찾고나니 한층 긴장된다.
 
쌀쌀한 가을 아침 9시. 라이더들이 내뿜는 들뜬 기운 속 레이스가 시작된다. 2000여명이 한꺼번에 출발하기 때문에 초반엔 적당한 속도로 함께 달려야 한다. 일요일 이른 아침 라이딩에 대한 열정만으로 하나된 이들의 풍경이 장관이다.
 
지난 18일 열린 제3회 백두대간 그란폰도 대회. 동양대학교 출발선 앞 레이스 시작 직전 선수들의 풍경© News1<br><br>
지난 18일 열린 제3회 백두대간 그란폰도 대회. 동양대학교 출발선 앞 레이스 시작 직전 선수들의 풍경© News1
그렇게 5㎞쯤 달렸을까. 평지가 오르막으로 바뀐다. 옥녀봉, 악명 높은 첫번째 업힐(오르막)이다. 거리 5.8㎞, 평균경사 8%. 중간중간 15% 안팎의 경사가 수시로 나온다. 몸이 풀리기도 전에 바로 업힐이 시작되니 죽을 맛이다. 게다가 레이스 초반이라 참가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내 페이스대로 타는 게 불가능하다. 무리 안에서 조심조심 페달을 밟는다.
 
코스의 10분의 1도 안왔는데 옥녀봉 중간부터 '끌바'(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 속출이다. 출발할 때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 땀이 떨어진다. 첫번째 업힐이란 부담감과 대규모 그룹 라이딩의 긴장 속에 어떻게 올랐는지 모르게 정상이다.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내리막 속도는 시속 30㎞로 제한. 다운힐에선 그룹이 커지면 사고의 위험이 높아지기에 몇명씩 끊어 내려보낸다.
 
옥녀봉 터널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진행요원이 신경질적으로 "앞에 두명이 크게 낙차했다"고 소리친다. 1, 2위로 달리던 여성 출전자들이 넘어졌다고 한다. 경기에선 크고 작은 사고가 있게 마련이다. 기록 보다 중요한 건 '안라'(안전한 라이딩)다. 최대한 조심하고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긴 다운힐을 마쳤더니 곧 아기자기한 업힐이 나온다. 옥녀봉을 넘었다면 윗원터고개와 귀내기고개는 귀여운 수준이다. 달리다 지인을 만났다.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사이클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앞선 이가 바람을 막아줘 뒤에서 편하게 라이딩을 할 수 있는 '실용적'인 이유도 크지만 심리적 효과도 작지 않다. '얼마나 남았냐, 왜이렇게 힘드냐, 먼저 가라 난 틀렸다' 등 하니마니 한 이야기를 안장 위에서 나누면서 서로 기운을 북돋는다.
 
코스 중간쯤 저수령이 나온다. 오늘 넘어야 하는 고개 중 가장 높다. 제치고 앞으로 나간다. 모르는 누가 "~~번 파이팅" 외쳐준다. 숨찬 소리로 "감사합니다" 외치고 달린다. 코스 곳곳 작은 마을에선 주민들이 나와 손을 흔들고 인사해준다. 모르는 이의 작은 선의에 힘이 난다.
 
저수령 정상에선 주최 측에서 준비한 보급식을 받고 일행을 기다렸다. 기다림을 핑계로, 실상은 힘들어서 20분 가까이 머물렀는데 아차,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일어날 즈음 보니 오후 1시가 넘었다. 완주 '컷인'까지 두시간이 남았는데 50㎞를 더가야 한다. 업힐이 두개나 더 남았다.
 
조급한 마음에 힘을 내보지만 쉽지 않다. 마지막 죽령은 가장 긴데(약 10㎞) 평균경사는 5%로 아주 어려운 업힐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100㎞ 가까이 달리면서 에너지가 많이 소진돼 상당히 힘들다. 겨우 겨우 오른 죽령 정상엔 영주 특산품 사과가 보급식으로 기다리고 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사과 두개를 집고 바로 내리막으로 향한다. 남은 거리는 20㎞ 남짓,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
 
내리막 뒤 평지가 이어지지만 포기하고 싶다. 이를 악물고 달리고 또 달린다. 영주 시내로 들어오니, '남은 거리 5㎞' 표지판이 나온다. 완주에 허락된 6시간 중 약 8분이 남은 듯하다. 다리가 무겁다.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다. 딱 포기하고 싶지만 경기가 끝난 뒤 후회할 것 같아 마지막 힘을 짜낸다. 천천히 표지판이 4㎞, 3㎞로 바뀐다.
 
1㎞ 남았을까. 동양대로 올라가는 나즈막한 언덕이 시작되는데 울고 싶다. 피니쉬라인이 코앞인데 시계를 보니 오후 3시4분. 출발할 때 약간 지체하긴 했지만 1~2분 차이로 탈락할 것 같다. 골라인을 앞둔 그 몇초 사이, 저수령에서 왜 그렇게 오래 쉬었을까. 오르막에서 조금 더 속력을 내볼걸. 후회가 밀려온다.
 
정신없이 골을 지났다. 페스티벌 풍의 연주곡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난다. 왜 이런 걸 하겠다고 이 고생인가. 주책맞게 눈물을 쏟으려는데 먼저 골인한 일행이 부른다. 얼른 눈물을 집어넣고 "고생했다"고 웃는 척한다.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는데 얼굴이 까끌까끌하다. 흔히 하는 말로 '염전이 터졌다'. 얼마나 땀을 흘렸는지, 여름을 방불케 하는 가을날씨에 소금이 일어 다들 얼굴이 허옇다.
 
뒤늦게 확인한 결과는 5시간59분26초97. 거짓말처럼 아슬아슬하게 컷인에 성공했다. 완주기념 메달도 받았다. 뛸듯이 기쁘다는 게 이런 거구나, 오랫만에 정말 기분이 좋다. 남자 1위의 성적은 3시간54분대, 여자 1위는 4시간44분대다. 그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그래도 경기가 끝난 후 확인해보니 마지막 죽령 다운힐부터 골인까지 14.6㎞ 구간을 평속 41.3㎞로 달렸다.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다. 
 
별 생각을 다하는 중에 정신없이 페달을 굴렸나보다. 포기하려던 순간 페달을 굴린 나를 칭찬해준다. 하지만 조금 더 영리하게 경기에 임했다면 여유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밀려온다. 
 
35초. 이 차이로 컷인을 못했다면? 물론 기분은 덜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라이딩은 계속될 것이고 삶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되 기대에 못미친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또 힘들게 올라가고 나면 짜릿한 다운힐이 기다리고 있다.
 
출전까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는데 달리길 잘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It ain't over till it's over). 그 문구를 되뇌이며 서울행 관광버스에서 숙면을 취했다.


cha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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