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욱하는 성격' 다잡은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에[피플in포커스]

트럼프 비서실장에 '얼음 아가씨' 수지 와일스…첫 女실장
2016·2020 대선서 경합주 플로리다주 승리 주역

6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州) 웨스트 팜비치 팜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선거일 밤 행사에서 수지 와일스(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웃고 있는 모습. 24.11.06 ⓒ AFP=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수지, 이리 와요. 수지, 이리로 와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승리 연설을 하면서 무대로 부른 인물. '얼음 아가씨(ice maiden)'라 불리는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67)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와일스가 마이크를 잡기를 거절하자, "수지는 뒤에 있는 걸 좋아한다. 뒤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라며 와일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미 프로농구(NBA)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이자 억만장자 투자자인 마크 큐반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강하고 지적인 여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을 때, "글쎄. 여기 있다"며 스스로를 언급한 와일스.

트럼프 전 대통령은 7일 그런 와일스를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성명에서 "수지는 강하고 똑똑하며 혁신적이며 보편적으로 존경받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에 따라 와일스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백악관 비서실장이 될 예정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인 수지 와일스가 지난 4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선거 집회에 참석을 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7일 (현지시간) 여성으론 처음으로 와일스를 집권 2기 첫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지명했다. 2024.11.08 ⓒ 로이터=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다른 사람들 못했던 트럼프 충동 제어"

백악관 비서실장은 미 대통령의 심복으로, 대통령이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누구와 대화하는지 결정하는 데 의견을 준다. 이 과정에서 '듣기 싫은 말'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비서실장들의 조언에 종종 짜증을 냈고, 지난 임기 4년 동안 4명의 비서실장을 갈아치웠다.

와일스는 정교하고 세밀한 선거 운동을 추진한 것은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한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NN은 와일스를 거론하며 "주변부 인사들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등 트럼프의 가장 정교하고 규율 있는 캠페인을 운영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언급했다.

로이터통신도 "그녀는 트럼프가 대본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는 데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디어 유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부 라틴계와 흑인 유권자를 사로잡기 위해 대담하고 성공적인 전략을 시작했으며, 전 대통령을 결정적인 승리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영국 가디언은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하지 못했던 일을 했다. 바로 트럼프의 충동을 제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라며 "트럼프를 꾸짖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허풍을 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트럼프의 충동 억제에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 과정에서 "남자들이 더 이상 여성을 아름답다고 표현하지 못한다"고 말한 뒤 와일스의 눈치를 보다가 "이 발언을 기록에서 지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거 맞죠, 수잔 와일스?(I'm allowed to do that, aren’t I, Susan Wiles?)"하고 재차 물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1월 중간선거 유세 현장에서 "여성에게 '아름답다'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며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비꼬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는데, 당시 논란을 생각해 와일스에게 이와 같은 허락을 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와일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와 트럼프 전 대통령 간 관계를 심화시키는 '새로운 남성 동맹'의 핵심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준 신임에 걸맞게 와일스 본인도 그에게 상당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백악관 비서실장의 역할을 설명한 책 '문지기(gatekeepers)'의 저자 크리스 휘플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정직과 충성심인데, 수지는 둘 다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세 번 연속 트럼프 캠프…2018년 디샌티스 승리 주역

뉴저지에서 태어나 자란 와일스는 유명 스포츠 캐스터이자 미국프로풋볼(NFL) 선수였던 팻 서머럴의 세 자녀 중 한명으로, 메릴랜드 대학을 졸업했다.

40년 이상 정계에 몸담은 와일스는 22살 잭 켐프 공화당 하원의원실에서 일한 것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0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후보 캠프 부국장으로 대선을 경험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당시 플로리다주 잭슨빌 시장을 맡고 있던 존 딜라니의 수석 보좌관을 지내다,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이었던 틸리 파울러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상반된, 공화당 온건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와일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적들과도 함께 일했다. 2010년에는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인 릭 스콧의 당선이 혁혁한 공신을 세웠다. 스콧 의원은 당시 와일스를 두고 "수지가 가장 잘하는 것은 무언가를 조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플로리다주에서 활동해 온 와일스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시 경합주로 분류되던 플로리다주에서 승리를 거머쥐도록 도왔고, 2018년에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 선거 캠프를 이끌었다. 전 디샌티스 캠프 직원은 폴리티코에 "수지 와일스가 없었다면 디샌티스는 주지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일(현지시간)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캔싱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선거 유세에 참가한 모습. 24.11.03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예슬 기자

'얼음 아가씨' 언론 노출도 꺼려…수수께끼 인물

그러나 와일스는 2017년 남편과 갈라선 데다 자신이 승리를 가져다줬던 디샌티스 캠프에서 밀려나기까지 했다. 와일스는 "나에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나는 내 명예부터 생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까지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며 "나는 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트럼프 전 대통령도 2020년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플로리다주는 2020년에도 미시간, 위스콘신, 애리조나주 등과 함께 경합주로 분류됐다. 그리고 와일스는 2020년 대선 플로리다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다줬다.

본격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함께하게 된 와일스는 그를 정치적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형사 소송에서 변호사들과 협상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아울러 와일스는 디샌티스 캠프에서 일했던 경험을 무기로 삼아 공화당 경선에서 디샌티스 주지사가 물러나도록 하는 데도 성공했다.

여론조사 전문가 토니 파브리지오는 폴리티코에 "트럼프에게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디샌티스였고, 그를 일찍, 그리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죽이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었다"고 말했고, 와일스와 함께 일하는 한 인물은 "디샌티스 에피소드는 와일스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의 축소판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와일스를 두고 '얼음 아가씨'라고 불렀다. 별명에 걸맞게 와일스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은색에 가까운 금발과 미러 선글라스로 차가운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또 와일스는 비서실장에 오를 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로이터는 "와일스는 개인적으로는 친절하지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며 "텔레비전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고 연설 약속도 피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수석 보좌관 역할에 자신과 거의 인연이 없는 사람을 선택했는데, 측근에서 선택하기로 한 이번 결정은 2016년 때와 극명하게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yeseul@news1.kr